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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읽는 책

「토지 7」

by *소은* 2021. 9. 10.

「토지 7」 박경리, 마로니에북스, 2012

 

▨ 오래된 해후 ▧

 

  「토지」는 늘 재밌게 읽고 있지만 「토지 7」은 유독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연속되면서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자세한 설명 없이 길상과 서희가 혼인하고 득남까지 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나중에 그 소회가 그려질까 기대된다. 그들이 마침내 혼인하기로 하로 나누었을 대화와 심경들이 궁금해 마지않다.

  기화라는 새로운 이름의 새로운 기생의 삶을 살고 있던 봉선은 혜관 스님을 따라 서희와 길상을 찾아 용정을 찾는다. 고향사람들이 있는 곳이 자신의 고향이라며, 용정을 고향 찾듯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가는 봉선이의 마음이 애달프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5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만날 때에는 나도 같이 떨렸다. 

  동학으로 길을 잡은 환이의 행보와, 김두수의 노리개가 되어버린 송애의 악다구니, 금녀에게 새롭게 펼쳐진 인생과, 조준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집으로 들어가겠다는 석이의 다짐까지. 어서 빨리 다음 권을 읽고 싶으나 꾹꾹 참아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거대한 대하 소설을 막힘없이 끌어가는 박경리 작가의 위대함을 느낀다. 박경리 작가는 토지를 쓰려고 태어나신 분이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러지 않고서는, 삶을 온전히 내주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작품이다. 책을 읽다 보면 그녀의 세계에 퐁당 빠져있는 나를 줄곧 발견하게 된다.  그 자체로 놀랍다.

 

 

 

  드디어 말아놓았던 지나간 세월은 풀어지고 연못가 그 자리로 돌아온 서희와 봉순이는 한 사내를 의식 밖으로 몰아내 버린다. 공동의 기억이란 순수한 것이다. 특히 어린 날의 그 공동의 기억 때문에 형제 자매 부모 자식이라는 의식의 유대가 지속되는지도 모를 일이라면, 이들이 비록 혈육이 아니요 신분의 도랑이 깊다 하여도, 서희가 남다른 아집의 여자라 하여도 이들의 해후가 슬프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p. 125

 

  길상은 고독했다. 고독한 결혼이었다. 한 사나이로서의자유는 날갯죽지가 부러졌다. 사랑하면서, 살을 저미듯 짙은 애정이면서, 그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던 애기씨, 최서희가 지금 길상에게 쓸쓸한 아내다. 피차가 다 쓸쓸하고 공허한가. 역설이며 이율배반이다. 인간이란 습관을 뛰어넘기 어려운 조물인지 모른다. 그 콧대 센 최서희는 여느 부인네 이상으로 공손했고, 지순하기만 하던 길상은 다분히 거칠어졌는데.  p. 140

 

  갑자기 두만 아버지 생각이 난다. 길상은 왜 하필 두만 아버지 생각이 났는지 알 수 없었다. 허풍 떠는 홍서방, 한 그릇 국밥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낙천인 박서방, 이들 때문인지 모른다. 풍전등화 같은 목숨, 하루살이 같은 인생의 이들, 연해주를, 만주 땅을 유랑하는 백성들이 품팔이 일꾼뿐일까마는 독립지사든 장사꾼이든 혹은 서희 같은 자산가. 심지어 김두수 등속의 앞잡이까지 풍전등화의 목숨이며 하루살이 같은 인생임엔 대동소이한 것. 남의 땅 위에 뿌리 박기도 어렵거니와 뿌리가 내린 들 튼튼할 까닭이 없다. 길상은 끝까지 살아남을 사람은 두만 아버지 같은 그런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죽은 윤보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놈이니 약은 쥐가 밤눈 어둡다느니 했었지만.  p. 181

 

   입매가 뱅글뱅글 돌 때 기화는 최치수로 착각하고 무서웠었는데 서희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는 기화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애기씨는 불쌍하다, 불행한 여인이다. 마음속으로 뇌는 기화 눈에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아름다움으로 현란하였던 서희 모습은 한갓 허깨비로 보여진다. 지산을 내려다본다. 발등에서 흔들리는 남빛 비단 치마, 하얀 버선발이 눈부시게 움직이는데 역시 자신도 허깨비인 것을 깨닫는다. 비로소 기화는 용전에 온 이후 처음으로 서희가 자기에게 무척 가까운 사람인 것을 느낀다. 별당 연못가에 상복 입은 계집아이 둘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았었던 그 시절처럼. 서희도 기화가 아니었었다면 미친 듯 허한 웃음을 웃었을 리가 없다. 서희는 그런 웃음을 웃은 적이 없었으니까.  p. 225

 

   기화는 어느덧 자신이 지난 역사의 운행 속을 흐르고 이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피의 운행이요 남의 피인 동시 자신의 피. 서희가 간도로 떠난 후 오 년간은 망실의 폐쇄의 세월이었음에 틀림없다. 하동에서 진주로, 진주에서 다시 서울로 격변한 생활의 오 년간은 해 저문 날 낯선 길손이 휘적휘적 걸어가던 세월임이 분명하다. 과거에 걸어놓은 고리가 오늘 이 손때 묻은 베틀 위에서 처음으로 연결되고, 과거를 운행하던 피는 비로소 지금 이 자리에서 이어져 흐르고 망실된 오 년간, 안개처럼 침침하며 까마득하며 떠나버린 밤배처럼 자취가 없다. 이상한 일이다. 한데 이 결렬함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이 안쓰러움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밑바닥에서부터 거슬러 오르는 삭막한 바람 소리는 어디서 오는 것이며 아아 또 이 한은 어디서 연유되어 맺힌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기화는 알지 못한다.  p. 249

 

 

 

 

「토지6」

▨ 길상의 고뇌 ▧  어린 시절 함께 자랐던 길상과 서희. 길상은 서희를 꽃 같은 애기씨로 살뜰히 모셨었고, 서희는 그런 길상에게 온전히 의지하지만 그들은 양반과 하인의 신분의 굴레를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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