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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읽는 책

「죽은 자의 집 청소」

by *소은* 2021. 9. 17.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김영사, 2020

▨ 죽음 언저리에서 행하는 특별한 서비스 ▧

 

  제목에 이끌려 무심코 집어 든 책이었다. 막연히 죽은 자들이 남긴 것들에 대한 단상이 담긴 에세이겠거니 생각하고 책을 펼쳤는데 이야기는 대부분 자살한 이들에 관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일단 예상을 빗나갔다. 작가는 죽은 이들의 남겨진 자리를 청소하는 특수 청소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살이다. 자살은 대부분 지인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자행되므로 사후 발견 시기가 턱없이 늦어질 수 있다. 시간이 대책 없이 흐르면서 시체는 부패될 것이고 구더기가 꼬일 것이고 시신이 누워있던 자리는 혈액과 분비물로 더럽혀질 것이고 종내에는 심각한 악취로 인해 이웃에 의해 발견된다. 썩은 포유류의 냄새는 너무나 유니크해서 한번 맡아본 사람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던 작가의 말이 섬뜩하다.

 

  죽은 이들이 남기고 간 것 중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자살에 쓰인 도구이다. 몰랐는데 착화탄이 많이 이용 되나 보다. (착화탄은 캠핑 등에서 불을 붙이는 데 쓰이는 불쏘시개의 하나로 번개탄 같은 것을 의미한다) 공기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공간의 틈이라는 틈은 모조리 청테이프로 붙여 놓고 착화탄을 펴 죽음을 준비한 사람에 대해 책은 천천히 관조한다.  끊어진 랜선이나 빨랫줄이 매달려 있는 천장의 파이프가 덩그러니 드러나 있는 모습을 보고 죽은 이가 생명을 다하기 전 바라봤을 시점들을 상상한다. 이런 내용으로 채워진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암울하고 어두우며 비관적인데 이상하게도 빨리 읽고 해치우고 싶지가 않았다. 숨죽여 천천히 읽고 다시 읽었다. 그냥 마구 페이지를 넘겨가며 책을 읽으면 안 될 거 같았다. 글을 써 내려간 작가와 죽은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마음이 아픈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아픈 마음이 도저히 어째 지지가 않을 때 누구는 생명의 끈을 놓고, 누구는 자신의 집에 쓰레기 산을 만든다. 이 세상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거나, 자신을 쓰레기와 동일시시키는 것일 거다. 작가는 그들의 아픔을 현장에서 직시하고 남겨진 것들을 단초 삼아 그들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종내에는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깨끗하게 정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책을 읽는 내내 우울했는데 이상하게도 책을 다 읽고 난 후엔 도리어 삶의 욕구가 생기는 거다. 죽음을 착착착 준비해서 실행하는 사람들과, 쓰레기와 오물을 착착착 모으고 모아 집에 쓰레기산을 만드는 사람들의 심리를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나는 머든 착착착 해내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래서 나는 '그냥 되는 데로 살아야겠구나' 생각했다. '착착착 해내지 못하는 나를 못마땅해하거나 못 미더워하지 말고 그저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야지'라는 터무니없는 결론에 이르렀다. 황당한 결론을 나 스스로 내리면서도 어쨌든 이렇게 살아갈 힘이 있는 나 스스로가 대견해진 것은 왜일까. 그건 어쩌면 삶을 내려놓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그래도 나는 그들만큼 비관적이지도 고독하지도 않다는 자만심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이르니 또 한 번 섬뜩해진다.

 

 

  건물관리회사 직원이 내게 일러준 주검 수습 날짜를 놓고 셈해보니, 전자 공급 중단 예정일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날이 겹친다. 희미했던 것이 명료해진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내 마음은 운동장만큼 거대한 응달 속으로 빠르게 접어든다. 이 비정한 도시에서는 전기가 끓어지면 삶도 끝나는 것일까? 독촉이 이어지다 마침내 전기가 끊긴 날, 그는 사람 키보다 높은 냉장고 앞에서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민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자동차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주차된 지역, 주거비가 비싸기로 소문난 이 동네에도 경제적인 결핍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가난은 차별도 경계도 없다. 모든 생명체에 들이닥치는 죽음처럼...... p. 46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젊은 나이에 미쳐서 스스로 돌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한 불행한 남자를 보았다면, 마치 인생의 보물인 양 부질없이 간직해온 내 과거의 불행함을 그 남자에게 그대로 전가하고는, 나는 결백하답시고 시치미 떼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바라보듯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이 지하 방에 관해 알게 된 유일한 진실이다. p. 101

 

 

  두 사람이 함께 누워 운명을 맞이했을 침대는 흑갈색 얼룩으로 물들어 있다. 어쩌면 이 죽음의 얼룩이야말로 함께 생업을 꾸려온 부부의 마지막 협업일지도 모르겠다. 참담하게 부패한 이 침대를 밝은 지상세계로 옮기기 위해선 매트리스를 해체하고 프레임을 분해해야 한다. 피와 분비물로 오염된 매트리스를 해체하는 일은 성가시고 까다롭다. 이런 고급 매트리스일수록 구조가 더욱 복잡하다. 게다가 두 구의 시신에서 나옴 피를 비롯한 분비액을 모두 흡수한 상황이니 평소보다 더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p. 110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삶, 죽는 자가 늘어날수록 활기를 띠는 비즈니스, 그 직업적인 아이러니를 떼어 놓고는 이 일을 설명할 수 없다. 죄책감이 내가 발을 디디고 선 땅이다. 뒤돌아보면 언제나 죄책감 위에 새겨진 기나긴 발자국이 저 멀리에서 나를 따라오고 있다. 움푹 들어간 자국이 깊고 선명하다.
  금파리가 공중에서 윙윙거리고, 살 오른 구더기가 모퉁이마다 꾸물거리고, 송장벌레와 진드기가 기어 다니는 곳에서 '특별함'이라는 왜소하고 부질없는 주각들을 찾아서 줍느니, 태풍이라고 소환해서 남겨진 발자국을 지우고 싶다. 누구도 묻지 않은 죄를 스스로 지우도록, 나는 매일 밤 꿈속에서나마 용서의 순례 길을 나서야 한다. p.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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