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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있는 일상6

식물이 주는 위안 작년 추석 선물로 받은 아보카도를 자르고 그 안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던 커다랗고 탐스러운 씨앗을 끝내 그냥 버리지 못해 뿌리를 내렸다. 뿌리가 내리는걸 지켜내기엔 은근한 기다림이 필요했으나 화분으로 옮겨 심고 싹을 틔운 이후로는 일사천리로 쑥쑥 자란다.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며 빽빽한 환경에서 커야 해서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일단 키부터 키운다는 아보카도는 삐쭉 큰 키에 겨우 몇 개 달린 가녀린 잎들이 봄 여름의 잎마름의 노고를 이겨내느라 힘들었는데 1년을 어찌어찌 채워가니 이제 제법 살만한가 보다. 손바닥보다 길쭉해진 생그러운 잎들을 내고 있는 아보카도 작은 나무가 어여쁘다. 창가에 들어오는 가을의 해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연약한 것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은근한 힘이 난다. 조금만 힘주어 짚으면.. 2021. 9. 26.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 스콘을 만들었다. 빵 굽기 최하 레벨이 스콘이므로 첫 베이킹 도전으로는 안성맞춤이다. 내가 생각하는 음식 만들기의 문제점은 이거다. 해보면 별거 아닌데 해보기가 싫다는 것. 나는 결혼해서 음식을 처음 시작했으니 그 경력(?)이 16년 차다.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번갈아 해 먹던 결혼 초에 비하면 지금은 요릿집 수준이다. ( 아, 그렇다고 내 요리가 요릿집 수준의 요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여전히 무얼 해 먹지가 인생 최대의 난제이지만 두 가지 음식으로 돌려 막기를 하던 그때와 비교하면 그래도 꽤 양호해졌다는 뜻이다. 하긴 16년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므로. 여하튼 모든 요리는 해보면 별거 아닌데 그게 참 하기가 싫어서 문제다. 준비과정도 너무 많고 나오는 설거지도 한가득인 것에 비해 먹는 건 순식간이라.. 2021. 7. 13.
경력단절 벗어나기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탁해 살기로 한 이상 결혼 이후의 삶은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펼쳐진다. 결혼한 여성이 임신과 출산, 육아의 테두리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아니 그 과정을 안정적으로 거치기 위해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출산을 한 다음의 선택지는 둘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으로 살지, 육아에 전념하는 전업주부로 살지를 정한다. 나는 한 번의 유산 경험이 뼈아팠고, 내 아이는 내가 키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두 번째 임신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케이스이다. 그렇게 16년이 흘렀다. 나는 아이 둘을 낳았고, 작은 존재들은 세월을 발라먹고 쑥쑥 커나갔다. 그러는 사이 나는 어느새 40대 중반이 된다. 경제 활동을 해야 했다. 다시 일을 해야.. 2021. 7. 4.
내 인생의 첫 김치 김치를 담갔다.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말이다.나는 내내 김치는 사서 먹을 거라고 했었다.아님 요리 잘하는 동생한테 얻어 먹지 머!!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시시 때때마다 계절김치를 하고야 마는 엄마가 나는 좀 뜨악했었다.김치가 대관절 무엇이길래...... 안 만들면 큰일 나나.김치 없어도 밥 잘 먹을 수 있는데.저렇게 힘들어 하면서 김치를 담글 이유가 있나.무슨무슨 김치를 담가 놓았으니 가져가라는 연락이 오면 화부터 났었다."허리 아프담서 무슨 또 김치!!" 요리를 즐겨하는 것도 아니고하루하루 뭐 해먹어야하나가 인생 최대 고민인 나 같은 사람에게김치 담그기는 언감생심 내가 도전할 분야가 아니었다.그런 내가 김치를 담갔다.이유는?모르겠다.나이를 먹은 모양이다.나도 이제 김치를 만.. 2021. 3. 22.
엄마의 아욱국 오늘은 엄마의 두 번째 기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를 잃은 지 2년이 되었다. 모두들 그러더라. 떠난 부모를 잊히려면 적어도 3년이라는 시간은 필요하다고. 그럼 난 최소 1년은 더 슬퍼해야 하는 걸까? 1년 후부터는 조금 담담하게 그리워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제사를 지내지는 않기로 했지만, 그게 못내 섭섭했던 아빠의 마음을 받아 절충안을 마련했다. 올해부터는 엄마가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을 한 가지 만들어 가기로 한 것이다. 나는 아욱국을 떠올렸고 모두들 동의했었다. 그래서 나는 오롯이 엄마를 위한 아욱국을 만든다. 아욱을 양동이에 담고 씻어낸 후 바락바락 치댄다. 엄마에게 배운 대로다. 아욱은 걸레 빨듯 바락바락 씻어내지 않으면 풋내도 나고 거칠어서 먹기 힘들다고 누차 말했던 엄마의 음성이 아직.. 2021. 3. 11.
손가락 접합 수술을 받다(상처 사진 있음 주의) 손가락을 꿰매었다. 어젯밤, 오래간만에 반찬 좀 만들어보겠다고 대파를 자르다가 내 손도 같이 잘랐다. 왼손 엄지 손가락 손톱 윗부분이 절반 이상 잘리고 그 밑의 살까지...... 악! 하는 소리와 함께 흘러 내리는 피의 양을 보고 젠장... 많이 베었다 생각했다. 아이들이 가져온 밴드로 정신없이 대강 고정해 놓고 붕대를 찾아 칭칭 감아 지혈하려는데 스멀스멀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는 것이, 아이고~ 큰일 냈구나....... 왠만큼 지혈이 되는 거 같아 집에서 소독하고 연고 바르고 말았는데, 오늘 일어나 보니 욱신거림이 심상치 않다. 동생이 알려준 손가락 발가락 접합 수술 전문이라는 삼전동 강남수병원을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무심하게도 핀셋으로 잘려진 손톱을 연거푸 들어 올려 보며, "이거 보이죠?? 밑의 .. 2021.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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