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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읽는 책

「시선으로부터,」(큰글자책)

by *소은* 2021. 9. 11.

「시선으로부터, 」(큰글자책)  정세랑, 문학동네, 2021

 

▨ 죽은 이를 추억하며 나를 위로하다 ▧



  「시선으로부터,」는 제사 문화를 강력하게 거부했던 예술가 심시선의 죽움 10년 후, 그의 아들 딸과 손자 손녀들이 그녀가 살았었던 하와이로 가서 딱 한번 그녀를 위한 제사를 지내기로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각각 심시선의 제사상에 올리고자 하는 유형의 무형의 것을 찾아 나감으로, 떠난이를 추억하며 동시에 자신 스스로를 위로한다.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가지들은 세어보니 12명이다. 12명의 인물들이 각자의 기억대로 떠난 이를 떠올리는 방식이 참 다르다. 관계란 여지없이 일대일 인가보다. 12명의 직업이나 상황들이 너무나 유니크해서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반면에 그 낯설음이 책을 끌고 가는 힘이 되었던 듯도 싶다.
  나의 할머니 시대에 심시선 여사와 같은 사람이 10명만 있었어도 우리나라의 양성평등 문화가 지금과는 다르게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읽는 내내 그녀가 안타깝고 또 부러웠다. 그녀의 애씀이 안타까웠고, 그녀의 당당함이 부러웠다. 어찌 되었든, 그녀를 사랑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자녀들이 이렇게 땅을 단단히 밟고 서 있으니까 다 괜찮은 것 같다.
  떠난 나의 엄마를 위해서라도 나도 내 것을 찾아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함께한다.

  오랜만에 한국 소설 신간을 읽었다. 신선하다는 느낌과 함께 고유한 한국말의 말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도서관마다 모두 예약상태여서 선택의 여지없이 큰글자책을 대출했는데, 생각보다 글자 크기가 너무 커서 놀랐다.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의 글씨 크기 정도 인것 같다. 노안이 시작되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출판사의 배려인가 보다. 큰 글자가 글을 읽기는 편했으나, 크고 두꺼워진 책을 어디 들고나가서 읽기는 또 불편한 것은 다른 문제이다.


 

어쨌든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평생 공격성이 있는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공격성이 발현되든 말든 살 밑에 있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취했던 이가 돌변하기 직전의 순간을 알았고 발을 밟힌 이가 미처 내뱉지 못한 욕설을 들었고, 겸손을 가장한 복수심을 감지했다. 누구에게나 공격성은 있지만, 그것이 희미한 사람과 모공에서 화약 냄새가 나는 사람들의 차이는 컸다. 나는 단단히 마음먹고선, 어찌 살아남았나 싶을 정도로 공격성이 없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웠다. 첫 번째 남편도 두 번째 남편도 친구들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야생에서라면 도태되었을 무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사랑했다. 그 무름을, 순정함을, 슬픔을, 유약함을.
마티아스 마우어는 그런 면에서 예방주사에 가까웠던 셈인데, 그런 예방주사 두 번 맞았다간 죽을 일이었다. 폭력은 사람의 인격을 조각한다. 조각하다가 아예 부숴버리기도 하지만, 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폭력의 기미를 감지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얻은 감지력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 절망해 방치해버리는 사람도 있어서 한 가지 결로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치욕스러운 경험도 요긴한 자원으로 썼으니 아주 무른 편은 아니었던 듯하다. p.160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 보고 비키라지.
공간을 크게 크게 쓰고
누가 뭐라든 해결하는 건 남들한테 맡겨버려요.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강연을 다니다 보면 질의응답 시간에 많은 부모들이 물어옵니다. 자녀가 예술 분야로 진로를 정하고 싶어 하는데 어떡하면 좋으냐고요. 그리도 그리고 글도 썼으니 제게 아주 현명한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듯하더라고요. 일단 제가 아는 한 최대로 가리는 것 없이 업계의 현실을 알려드리지마는, 또 너무 완강하게 반대하거나 금지하지는 마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예술계의 실패와 성공이 모두 큰 것은, 그리고 성공 쪽이 훨씬 드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 영영 그럴 테지요.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절박한 안위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술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사람이,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천천히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제가 얼마나 자주 봤는지 아십니까?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수준의 자해입니다. 아아, 이 사람 큰일 났다, 싶을 땐 늦었고 곁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디다. 큰 회사에 다니고, 가업을 잇고, 대단한 돈을 거머쥐고, 다정한 반려인이나 귀여운 아이들을 얻고 나서도 무언가 안에서 그네들을 갉아먹습니다. 기생충이 먹을 게 없으면 내장을 파고들 듯이요. (중략) 그러니 남은 질문은 이렇습니다. 자기 자식이 어떤 성품인지 다 아실 테니 재능의 있고 없고를 떠나,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해칠 것 같습니까? 즐겁게 그리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는지,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하는지 관찰하십시오. 특히 후자라면 더더욱 인생의 경로를 대신 그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아이들은 움직이는 엔진이 다른 사람이 조작할 수 없습니다. 네 다른 사람입니다. 부모도 결국 다른 사람입니다. 세상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걷어내주시기야 해야겠지만, 가능성이 조금 번쩍대다 마는지 오래 타는지 저가 알아서 확인하도록 두십시오.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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