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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읽는 책

「토지 10」

by *소은* 2022. 2. 21.

「토지 10」 박경리, 마로니에북스., 2012

 

 그러나 소설을 쓴다는 것, 지금의 상현에게는 소설을 쓴다는 것, 쓰는 행위 이상의 절실한 무엇과의 대결상태, 문학은 하나의 방패였었는지 모른다. 싸움의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래도 좋은가, 이래도 좋은가, 수없이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면서 낫질도 도끼질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내부, 자신을 둘러싼 외부와의 대결은, 그러나 언제 끝날지, 과연 끝날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욕망과 갈등과 자포자기, 제약과 여건과 의무, 그 모든 것은 첩첩이 쌓인 가시덤불, 이동진의 아들이 일제하에서 어떻게 발붙일 것인가. 발붙인 곳도 없거니와 발을 붙여도 아니 된다. 그러면 어디로 가나 갈 곳이 없다.  p. 55

 

 

 인간이 인간에 의해 이렇게 무력해지는가, 홍이는 뼈에 사무치도록 그것을 깨달았다. 고문을 당할 때는 무엇이든 했노라 외치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가 모르는 데야 살이 찍혀 나간 들 별수 없는 일이었다. 한 덩이의 밥을 위해서라면 내일 죽고 말 얘기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죽고 말 그 얘기가 없는 데야 어쩔 것인가. 사흘이 지나고 나흘로 접어드는 날 열여섯 명의 장정들 거의 모두는 고문의 고통, 배고픔의 고통도 한 고비를 넘겼다. 이따금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다간 그것도 자맥질하듯 흘러가버리고 짐짝같이 옴짝달싹을 못한다. p. 220

 

 

 말등에서 흔들리며 홍이는 하늘과 산과 강물을 바라본다. 하늘과 산과 강물같이 홍이는 진정 무심하다. 별난 것도 없고 별나게 살아서도 안 될 것이며 두드러지게 보여도 안될 것이다.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지만 쉽게 살 수 없는 곳도 아닐 것이다. 뜨겁게 살 수 없다 하여 차갑게 살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사랑할 수 없다고 미음으로 살아도 아니 될 것이다. 그러면은 지아비도 될 수 있는 것이요. 아이 아비도 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얼굴들은 낡았고 살가죽은 헐거운데 진속 옷에 새 신발, 영팔이는 남의 통영갓까지 빌려 쓰고 두 활개를 저으며 간다. 지아비가 되고 아이 아비가 되고 그리고 아이 할아배가되고 버둥거리고 나부대어도 결국은 저 산천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을, 현병대서 고초를 겪고 경찰서 마룻바닥에서 홍이 얻은 결론은 각박하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혼인을 승낙한 것도 그 생각 때문인지 모른다.  p. 245

 

 항상 문제라는 것은 역사의 문젯거리라는 뜻이다. 서의돈이 사회주의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직은 사회주의자가 아닌 선우신이지만 서의돈의 말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운명인 동시 운명이 아니다. 분명 운명이 아닌 쪽인지 모른다. 하느님을 섬길 적에 역사는 운명인 동시게 운명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신과 인간의 포옹일 수도 있고 신과 인간의 싸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느님을 몰아낸다면 피라미드는 쌓아 올리던 고대의 노예나 노예선을 타야 했던 아프리카의 검둥이는 역사의 운명 탓이 아니다. 강자의 이빨이 찢어발긴 희생물일 뿐이다. 선우신은 가느다란 한숨을 내쉰다. p. 275

 

 

 박의사는 재산과 명성을 물론 원했었다. 그러나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마비되는 것을 결코 원치는 아니했다. 사실 그는 환자를 취급하는 과정에서 순수하게 열중해왔으며 그 과정은 그의 생활의 전부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숙달된 의술, 적절한 치료를 한다 하여도 필경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보면 실수나 착오나 오진을 보완하는 것은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성실해야 하는 것인데, 성실한 만큼 자라고 꽃 피어주는 식물과도 같은 것이 환자다. 인간 멸시,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 위험을 가장 많이 안고 있는 것이 의사이고 보면 병과 죽음이 항상 동의를 내포하고 있으며 환자의 구십구 프로가 죽음의 공포로 하여 인간의 존엄성 따위를 내동댕이쳐버린, 가장 나약하고 비겁한 모습을 서슴없이 의사 앞에 드러낼 때 의사는 그들 앞에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 의사에게 함정이기도 한 것이다.  p. 387

 

 

 시초부터 정윤이나 숙희는 3호실 환자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환자 쪽에서 불만이 많아 광태를 부리기 때문인데, 박의사 역시 이색적인 환자라는 것은 느끼고 있다. 대개의 환자는 의사에게 목숨을 위탁하는 복종심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매달리는 눈빛, 심약한 미소, 혹은 겁먹은 반항, 그러나 3호실의 환자만은 의사의 권위 같은 것은 서 푼짜리도 못되었고 당당하게 자기 생명의 소중함을 주장했다. 수틀리면 행패 부리겠다는 늘 그런 자세인데 꼼짝 못하고 누워 일을 적에도 입에서는 계속 돌팔매질하듯 말이 튀어나왔고 눈물 흘릴 적에도 눈물은 슬픔이 아니었다. 시위요 저주요 협박이었다. 신에게조차 날 살려내지 않으면 물어뜯겠다는, 그렇게 철저하고 완벽한 아집을, 그러나 박의사는 그 앞에서 껄껄 웃고 만다. 죽음은 절대적인 승리자요, 거대한 암벽에 모래알을 던지는 환자는 눈물 나게 측은한 것이기 때문이다. p.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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