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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읽는 책

「남아 있는 나날」

by *소은* 2021. 12. 18.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송은경 옮김, 민음사, 2009

 

▨ 인생의 저녁 ▧

 

 부커 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은 달링턴 홀에서 35년간 달링턴경을 모셔온 집사 스티븐슨이 새로운 미국 신사 페러데이를 모시면서 떠나게 된 6일간의 여행 여정을 통해 지난날을 떠올리며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그는 완벽한 집사였다. 스티븐슨은 계속해서 집사가 가져야 하는 '품위'의 중요성과  '위대한' 집사에 대해 역설한다. 역시 집사로 한평생을 바쳤던 아버지의 임종도, 켄턴 양과의 사랑도 그 '품위'와 '위대함'이라는 명목 아래 철저히 무시된 체 그는 자신의 맡은 바 일을 해내고, 끊임없이 그것을 정당화한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스티븐슨의 그런 안타까운 인생이 서글펐는데,  두 번째 읽으면서는 그가 계속해서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핑계대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으로 답답했다. 직업윤리와 자신의 삶의 가치를 분리하지 못하고 그 안에서 헤매고 있는 스티븐슨의 독백은 독자를 끊임없이 설득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실패했다. 여행에서 돌아가 지금 모시고 있는 미국 신사의 농담을 어떻게 받아줘야 할지를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변화를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스티븐슨의 섬김 의식은 그것으로 하여금 어디까지 그의 인생을 숨길 수 있도록 할까? 작품 해설에서 김난주는 한나 아렌트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성실하게 일상을 반복함으로써 악을 돕고 악에 이용당하는 범인들의 삶, 그 소름 끼치는 관성의 폐해에 대해 말한다. 600만여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는 데 앞장선 전범 아이히만은 도착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을 지닌 괴물이 아니라 명령에 복종하고 근면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스티븐슨이 위대한 집사였다면, 아이히만은 좋은 아버지, 자상한 남편, 성실한 직업인이었다. 

 

 

 진정으로 저명한 가문과의 연계야말로 '위대함'의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이 생각하면 할수록 명백해지는 것 같다. 자신이 봉사해 온 세월을 돌아보며, 나는 위대한 신사에게 내 재능을 바쳤노라고, 그래서 그 신사를 통해 인류에 봉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다.  p.149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사실 나는 오랜 세월 달링턴 홀에서 그분을 모시면서 세상이라는 바퀴의 중심축에 내가 꿈꾼 만큼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달링턴 경에게 35년을 바쳤다. 그리고 그 기간만큼은 나 자신이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 '저명한 가문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말하더라도 그리 부당한 주장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내가 지금까지의 경력을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만족은 주로 그 시절에 성취했던 것들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음에 오늘도 나는 자랑스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p. 161

 

 

 해리 스미스 씨가 설명한 ‘품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그의 이야기에는 진지한 생각이라고 볼 만한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해리스미스 씨가 ‘품위’란 말을 내가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는 것은 물론 인정한다. 그렇다 치더라도, 그 나름의 관점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존중해 주기엔 너무나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우리 영국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중대한 나랏일을 고민하고 각자 견해를 가질 의무가 있다는 대목에는 어느정도 일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삶이란 게 뻔한 마당에 어떻게 온갖 국사에 대해, 좀 황당한 주장이지만 해리 스미스 씨가 말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수준만큼의 ‘확고한 소신’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한 기대는 지극히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내가 보기에는 크게 바람직하지도 않다. 평범한 사람들의 지식과 학식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게 마련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중대한 국사를 논의하는 데 기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관점에서 사람의 ‘품위’를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다.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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