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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읽는 책

「프리즘」

by *소은* 2021. 10. 30.

「프리즘」 손원평, 은행나무, 2020

 

▧ 빛나는 사랑 ▨

 

  구나 크든 작든 살아가면서 안고 가야 할 결핍이 있다. 어렸을 때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큰 사고를 당했거나, 아니면 죽음을 목도했더가 하는 그런 아픔들. 그런 결핍은 나도 모르게 서서히, 아니면 너무나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이라 사실 본인이 스스로 대처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게는 그 결핍으로 인한 많은 관계들의 삐걱거림을 겪어내며 살아가게 된다. 

  「프리즘」에 등장하는 4명의 인물, 예진, 도원, 재인, 호계 역시 그러하다. 그들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또 그 결핍으로 인해 사랑에 어려움을 느끼는 불안한 존재들이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은 어여쁘다. 사랑으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나와 너의 아픔들을 고백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 관계가 어떤 관계이든 응원하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빛날 수 있는 존재로 바로 설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누가 내게 다가온다면 난 이렇게 반짝일 수 있을까.
또 나는 누군가에게 다정하고 찬란한 빛을 뿜어내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빛내주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호계는 빵을 많이 좋아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을 채운 냄새는 언제나 유혹적이다. 뭐랄까, 이해가 되는 냄새라고나 할까. 달콤하고 부드럽도 몽글몽글하다.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 집에 홀딱 반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동시에 호계는 이 냄새가 진실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하고 마냥 병아릿빛이다. 그러므로 가짜다. 이것이 대략 호계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p. 31

 

 

  잊으려 해도 아프게 상기되고 만다는 점에서 실연이란 목 안의 염증처럼 고통스럽다. 사랑이 끝나고 나면 예진은 늘 처음으로 돌아가 기억을 곱씹곤 했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비밀스런 우연을 운명이라 느꼈던 시작점, 수줍은 마음이 불타오르던 순간들, 차츰 무언가가 변해가고 마침내 사소한 일마다 성내는 상대방을 보는 어떤 날, 퇴색해버린 마음을 질책하고 추궁하고 끝내 낯 모르는 행인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야 마는 때, 그리고 치쳐버린 어느 날의 예감했던 이별, 사랑의 끝은 한결같다. 아니 천편일률적으로 괴롭고 찜찜하다. 완전히 악질적이다.  p. 117

 

 

 

  포장을 벗겨내고, 마음에 깃든 숱한 어둠의 조각들을 내보여도 자신을 향한 도원의 눈빛은 지속될 수 있을까. 절대로,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틈 없이 밀착한 도원의 품에서 재인의 비밀은 한충 더 깊어진다. 두터운 비밀엔 그늘이 스민다. 재인은 그 그늘을 묻어둔 채, 빛을 그리듯 도원을 그러안고 있었다.  p. 154

 

 

 

나는 누구와 연결돼 있을까

 

 

 

 

  내내 그 질문은 안은 채 호계의 연필과 붓은 점점 세심하게 낯선 사람들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전에는 연애나 사랑이 의미 없이 흔해 빠진 거라 생각했다. 하나 이제 호계는 사람 사이에 맞는 관계라는 건 자시 자신이 확장되는 것임을 깨닫는 중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연결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단 하나, 언제고 끊어질 수 있는 관계를 수없이 맺으며 살아가게 될 거라는 점이다.  p. 210

 

 

  이제 재인의 세계에는 엄마도 현조 씨도 도원 씨도 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호계를 생각하면 도원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한쪽 가슴이 아리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때 소중하고 가까웠던 것들은 다 사라졌다. 재인은 그녀가 늘 실패하던 것에 성공했다. 연결되지 않고 끊어내는 것을. 그러므로 그녀는 이제 백지처럼 결백한 영혼을 지닌 새사람이다.  p. 231

 

 

  다시 깊은 내면에서 예진은 기다린다. 기대하고 고대한다. 갈망하고 염원한다. 아름다워도 상처 받아도, 아파서 후회해도 사랑이란 건 멈춰지지가 않는다. 사랑의 속성이 있다면 시작한다는 것, 끝난다는 것, 불타오르고 희미해져 꺼진다는 것, 그리고 또다시 다른 얼굴로 시작된다는 것, 그 끊임없는 사이클을 살아 있는 내내 오간다는 것.
 그렇게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랑은 영원히 계속된다. 뜨거운 도시의 거리 위에서, 한겨울에도 늘 여름인 마음속에서, 태양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우주가 점이 되어 소멸하는 그날까지. p.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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