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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읽는 책

「토지 8」

by *소은* 2021. 10. 2.

「토지 8」 박경리, 마로니에북스, 2012

 

▨ 월선의 죽음 ▧


  월선이 생을 다했다. 용이가 찾아 올 것이라는걸 굳게 믿은 월선과 내가 갈때까지는 살아있으리라는 것을 역시 굳게 믿고 있었덧 용이. 그들의 사랑의 깊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이들의 사랑이 부부들의 그것처럼 일상적인 생활에서 영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또 그랬기에 끝까지 빛날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할 수 있는 만큼 사랑했고 그래서 여한없이 죽을 수 있다는 월선이의 마지막 말이 인상깊다. 하긴 그녀에겐 친엄마 보다 자신을 끔찍히 여기는 홍이가 있었으니까. 한편 홍이의 친모, 임이네의 끝간데 없는 악다구니는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아까 혜관께서는 회피를 하십디다만 그 사람한테 신념이 있는가 그게 문제요. 투철하지요. 그러나 투철하다 하여 그것을 신념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외다. 그 사람은 위험의 불씨를 안고 있소. 신념이 있느냐 하고 묻는다 해서 그 사람이 배신자가 된다거나 굴복한다거나 안일한 생활과 타협을 한다거나. 그럴 위인이 아닌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소. 오히려 그 반대, 제 몸을 불사르거나 때리 부수는 최후수단을 언제 어느 시 그가 실행할지 모를 일이오. 그리고 그것에는 우리, 이 피나게 줏어 모아 형체를 겨우 만들어 놓은 동학이 함께 불사루어지거나 때려 부숴질 위험이 있소." (중략) 메마른 정열, 그렇다, 환이의 정열은 메마른 것이다. 메말랐기 때문에 냉철한 것이다. 목적은 있으나 희미하고 과정만이 뚜렷하다. 대담하고 인내심이 깊은 것은 야망을 위한 집념 때문이 아니다. 절망의 정열, 그렇다. 환이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걷고 있다. p 45



  공노인은 두메며 길상이며 월선이 봉순이 모두 기찬 얘기책 속의 인물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하나의 인생이 모두 다 기차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거이 어디 있나.' p. 59

 

  서희에게는 모든 일이 뜻대로 어김없이 아니 예상 이상으로 된 것이 사실이다. 다만 마무리가 남아 있을 뿐, 강남으로 가는 제비처럼 날면 되는 것이다. 자식 둘을 앞세우고 날면 되는 것이다. 그렇데 왜 이리 허한가. 때때로 마음 밑바닥에서 거슬러 오르는 설렁한 냉 바람은 무슨 까닭인가. 전신을 떨게 하는 춥고 적막한 바람 앞에 그냥 주저앉아버리고 싶어지는 그 까닭을 서희가 왜 모르겠는가. 내내 외면해왔었다. 보이지 않게 가로질러진 벽을 서희는 무던히도 둔하게 느끼지 않는 듯 외면해왔었다. 그런데 그것을 이제는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과연 길상은 처자와 더불어 조선으로 돌아갈 것인가. 인력서에 흔들리면서 서희는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인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길상은 조선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내의 경우는 그렇다 치고 두 자식의 끈질긴 핏줄을 설마 외면하기야 하려고. 다짐했으나 대단히 자신 없는 일이다. p. 140


  공노인과 봉순이등의 도움으로 조준구의 재산을 조금씩 조금씩 회수하는데 성공한 서희 일가는 드디어  조선으로 돌아간다. 조준구에 대한 복수와 귀향만을 목적으로 살아왔던 서희와는 달리 길상의 마음은 복잡하다. 조선에서의 길상은 하인의 신분이었고 의병활동의 이력도 있으며 무엇보다 서희와의 관계가 녹녹치 않다.  고뇌하던 길상은 결국 서희와 동행하지 않는다.  앞으로 그들의 간극이 좁혀질 날이 오게될지...




  길상은 김환의 외침으로 오히려 자신이 굳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서는 그 자신을. 그것은 생명의 유한이다. 죄에 얽매인 것 아닌 삼라만상, 모든 것은 생명이 있고 또 생명이 없는 유한, 역설이라면 기막힌 역설이겠으나. 어느 시기까지 유지될 안정일지는 모르지만 길상은 서희와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담백한 상태로 자리 잡는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이 죽 끓듯 하는 환의 그 반역의 피조차 돌연 잠들어버린 느낌이다. 왜 이리 고요한가. 고요하게 고요하게 네 개의 발은 내디뎌지고 있는 것이다. p 375



  이번편에서 환이는 윤씨부인의 아들임을 길상과 서희에게 드러내고 그들을 마주한다. 윤씨부인의 아들임을 드러내는것은 윤씨부인의 오랜 비밀을 드러내는 일이다. 환이와 길상은 여러면에서 비슷한 처지. 그들은 삼일 밤낫으로 함께 술을 마시고 떠돌며 회포를 풀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번 8편으로 2부가 끝이난다. 척박했던 용정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조선 진주로 돌아가는 이들의 여정이 자못 궁금해진다.

  김두수의 파렴치함과 송애의 낯두꺼움, 금녀의 변화와 두메만 남겨놓고 그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강포수까지. 수많은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새로 펼쳐지기도 하고 마무리지어지기도 하면 세대를 바뀌어가며 펼쳐지고 있다. 무릇 산다는거 그런건 아닐지... 인생을 느낄 수 있는 대하소설의 묘미이다.



 

「토지 7」

▨ 오래된 해후 ▧ 「토지」는 늘 재밌게 읽고 있지만 「토지 7」은 유독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연속되면서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자세한 설명 없이 길상과 서희가 혼인하고 득남까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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