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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읽는 책

「인생수정」

by *소은* 2021. 10. 16.

「인생수정」 조너선 프랜즌, 김시현 옮김, 은행나무, 2012

 

▨ 가족의 안과 밖 ▧


  「인생수정」은 가족 이야기이다.
  전미 도서상, <타임> 선정 100대 영문 소설,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 최고의 책이라는 타이틀에 빛난다. 700페이지가 넘는 두께의 압박감을 떨치고 읽기 시작했으나, 무수히 나오는 미국의 장소와 물건들과 그들의 문화들이 익숙지 않아 내용들이 쉽게 다가오지가 않는다. 이런 말들이 소설을 끌어가는데 중요한 요소인가 싶게 길게 이어지는 설명들은 책을 포기하지 않고 읽기 쉽지 않게 지루하기도 했다. 한국 작가가 쓴 한국 소설이었다면 좀 더 재미있게 읽었을까.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하기를 좋아하는 비관적이고 독단적인 아버지 알프레드와 온가족이 크리스마스에 모이길 일 년 내내 기대하고 사는 집요함이 무서운 어머지 이니드. 완벽한 아들, 완벽한 남편과 아빠이고 싶지만 사실을 그 모든 게 남의 시선의 의식에서 시작된 큰 아들 개리와 교수로 성공한 듯 하지만 이리저리 휘둘리며 지질한 둘째 칩. 그리고 가장 정상적인 인물로 나오지만, 아버지의 엄격함과 어머니의 비뚤어진 의식 속에서 진실한 사랑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성 정체성을 갖게 된 드니즈가 이 가족의 구성원이다.  

 

  그들이 혼자 있을 때와 가족 안에서 있을 때의 달라지는 모습이나 감춰진 속마음, 삐뚤어진 마음들을 적나라하게 읽으면서 참 불편 했는데, 사실은 누구나 갖고 있을 수 있는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또 씁쓸해지기도 했다.  그들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비로소 크리스마스에 함께 모이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가족의 단절과 해체에 대해 쭉 말하다가 결국은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라는 결말로 우리를 인도한다. 드니즈는 자신의 비밀을 끝까지 품고 간 아버지의 사랑을 뒤늦게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희생해야 했던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삶도 이해하게 된다. 같지만 다른 시간을 보내는 가족이라는 관계는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누구보다 멀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 거리를 좁혀가는 데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단절은 계속되는 단절을 낳고 불통은 관계를 끊어 내니까.  

 

가족에 대해 한번 더 생각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 소설이다. 각각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 묘사와 독특한 사건들과 그 안에서의 익살스러운 풍자들이 있어 지루한 가운데도 책을 놓지 않게 만든 점이 크다.

가족 구성원 별로 발췌문을 정리해 보았다.





알프레드

 

그에게 실존의 문제란 이런 것이었다. 흙속에서 밀알이 싹을 틔우듯 세상은 생장점에 세포를 더하고 더하며 순간을 축적하고 축적하면서 시간을 헤쳐 앞으로 나아가기에, 가장 싱싱한 순간의 세상을 붙잡는다 해도 다음번에 이를 다시 붙잡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었다. p.89

 

고통은 그의 주체성을 훼손시켰다. 이렇게 떨어대는 손은 더 이상 그의 손이 아니었고, 그의 명령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말 안 듣는 아이 같았다. 이기적인 비참함에 빠져 막무가내로 울어대는 두 살배기 아이. 엄격하게 꾸짖으면 꾸짖을수록 아이는 귓등으로 흘려듣고는 더더욱 비참해야며 제멋대로 울어댄다. 어른답게 행동하기를 거부하는 아이의 고집과 반항에 그는 늘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무책임과 버릇없음은 그의 실존적 골칫거리였고, 악마의 논리에 휘둘리는 또 다른 세계였다. 그런데 이제 그의 신체가 그의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하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고통을 주고 있었다. p. 90

 

식당 아래 어두운 실험실에서 앨프레드는 머리를 숙인 채 눈을 감고 남아있었다. 간절히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를 솔직히 알리기를 끔찍이 싫어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묘했다. 마침내 이제 밀실에 홀로 남은 그는 누군가가 들어와 방해하기를 소망했다. 이 누군가가 그의 깊은 아픔을 보기를 원했다. 그가 그녀에게 냉담하다 하더라도 그녀가 그에게 냉담하게 구는 것은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행복하게 탁구를 치며 그의 문 앞을 돌아다니면서도 결코 노크 해 어떤지 묻지 않다니 너무도 불공평했다. p. 343

 

한마디로 핵심은 사생활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사생활 없는 개인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양로원에서는 전혀 사생활을 누릴 수 없을 터였다. p. 594




이니드

 

몇 해 전만 해도 이니드의 편지는 드니즈와 그녀의 파탄난 결혼에 대한 절망을 가득 뱉으며 그 남자는 드니즈에 비해 너무 늙었어! 같은 문장에 밑줄을 두 개나 그은 반면, 칩이 D대학의 교수가 된 것에 대해 자부심과 황홀감을 화려하게 늘어놓았다. 이니드가 자식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데 능하며 그녀의 칭찬은 대개 양날의 검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드니즈처럼 영리하고 신념 강한 여성이 어떻게 자기 몸을 마케팅 목적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지 칩은 경악했다. p. 71

 

아이들에게 하루 세 끼를 해먹이고, 깨끗한 옷을 입히고, 책을 읽어주고, 아프면 간호하고, 부엌 바닥을 닦고, 시트를 빨고, 셔츠를 다림질했다. 더구나 남편의 키스나 다정한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했다. 물론 이러한 노동에 대한 칭찬을 받고자 하면 알은 그저 물을 것이다. 의식주를 해결할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누구냐고. 그가 일에 너무나 만족해하는 나머지 그녀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반면, 가사 일은 너무나 지루해 그녀가 그의 사랑을 두 배로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전혀 개의치도 않았다. 이성적 계산법으로 그의 노동은 그녀의 노동을 무효화했다. p. 323



개리

 

자신을 극단적으로 필요로 했던 어머니를 둔 덕분에 어머니의 행복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개리는 알았다. p.217

 

젖은 그릇을 닦는 것은 고향집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맞먹는 시시포스의 바위인 것만 같았다. 정말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예 관여를 않는 것이었다. p. 233

 

이니드는 개리의 '물질주의'와 '과시욕'과 '돈에 대한 집착'을 에둘러서 투덜댔다. 마치 그녀 자신은 돈에 초월한 사람인 양 굴었다! 그럴 기회가 있다 해도 개리의 집처럼 좋은 주택을 사지 않고, 개리가 꾸민 것처럼 가구를 들여놓지 않을 듯이 그는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어머니의 세 자식들 중 내 삶은 어머니의 삶과 가장 다릅니다! 어머니가 추구하라고 가르친 것을 나는 얻었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나를 못마땅해하다뇨!
하지만 술기운이 마침내 끓어 넘칠 때 그가 실제로 한 말은 이것이었다.
"드니즈한테 요새 누구랑 만나는지 물어보지 그래요. 유부남인지, 자식은 있는지." p. 285

 

총체적으로 볼 때 개리가 질병에 대해 갖고 있는 문제에는 질병이 대량의 인간 육체와 관련되어있다는 점과 그가 대량의 인간 육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외에도, 질병이 저급해 보인다는 점도 한몫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담배를 피웠고, 가난한 사람들은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열두 개씩 먹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까운 친척에게 임신을 당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위생 상태가 엉망이고, 유독한 환경에서 살았다. 질병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은 인류의 변종으로, 감사하게도 병원이나 센트럴 의료용품 할인점 같은 장소 외에는 개리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그들은 더 멍청하고, 더 슬프고, 더 뚱뚱하고, 체념 속에서 더 고통받는 종자였다. 병에 걸린 최하층 계급은 그가 정말로, 정말로 멀리하고 싶은 부류였다. p. 618



 

"내 말은 말이야. 멜리사, 자식은 부모랑 잘 지내지 않는 법이라는 거야. 부모는 자식의 최고의 친구가 아니라 반항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거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식은 하나의 인격으로 성장해가는 거고." p.80

 

문제는 돈과, 돈 없는 삶의 치욕이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핸드폰과 양키 캡 모자와 SUV는 하나같이 고문이었다. 그가 탐을 내거나 시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돈 없는 그는 제대로 된 사람이라 할 수 없었다. p. 139



드니즈

 

그녀는 무엇보다도 사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되고 싶었다. 형편없는 헤어스타일을 하고는 의상 문제에 기묘한 분노를 표출하는 그룹은 물론이고 그 어떤 그룹에도 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름표나 라이프스타일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으로 돌아갔다. (중략) 아무도 만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편이 나았다.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삶은 일종의 반드르르한 벨벳이었다. 한쪽에서 들여다보면 자신이 온통 가괴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살짝 고개를 들면 모든 것이 너무나 정상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일만 하는 한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p. 490

 

다른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힘겨울지 상상할 수 없다면 웃거나 잠자거나 먹는 것은 고사하고 숨 쉴 자격조차 없는 것은 아닐까? p.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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