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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읽는 책

「다산의 아버님께」

by *소은* 2021. 9. 8.

「다산의 아버님께」 안소영 지음, 이승민 그림, 보림, 2008

 

▨ 그만큼 치열했던 아들의 삶 ▧

 

  「다산의 아버님께」는 신유박해로 인해 유배를 떠나게 된 정약용의 삶을 아들 학유의 입장에서 반추하며 써 내려간 글이다.

  어린 시절 국어 선생님에게 받은 다산 정약용의 서한집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인상 깊게 읽었던 작가는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후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학연, 학유 형제를 다시 불러들여 그들의 이야기로 책을 써 내려갔다. 오랜 유배에도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꿋꿋이 보듬고 지켜나갔던 정약용은 수많은 저서들을 남기며 두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모두에게 존경받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가장의 부재를 여실히 느끼면서도 가문을 무사히 이어가고자 아버지의 귀환을 간절히 바라던 그 가족들의 아픔은 어느 결에서 살펴보아야 할까.

  18년이라는 길고 긴 유배의 세월을 견뎌낸 것은 정약용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족도 함께였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애틋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강물은 소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두물머리에서 흘러오고 있었다. 내 고향은 뒤편에 있는 고개 이름을 따라 '마재'라도고 하지만, 우리는 집 앞을 흐르는 강 이름을 따라 소내라고 더 즐겨 부른다. 가파른 산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온 서늘한 북한강과 뭉근한 늪에서 생겨난 온화한 남한강은 두물머리에서 만나, 비로소 한강이라는 하나의 이름이 되어 흘러간다. 두물머리에서 내려와 소내를 흐르는 저 물결은 팔당을 지나면 서울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 물줄기가 되고, 다시 바다로 나아가 아버님이 계신 강진의 다산 앞바다까지 흘러갈 것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흘러온 물결들이 만나는 저 두물머리처럼, 다산의 아버님과 이곳 소내 우리 가족들의 그리움도 편히 만나 편안히 젖을 곳이 있을까. 아버님이 계신 남도 땅 강진의 다산이 우리들의 두물머리일까, 그 머나먼 곳이? p. 13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이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움직인다는 아버님의 강의는 새로웠다. 그 사람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가치는 결국 그의 실제 생활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법, 사람들의 선함과 악함, 세상의 아름다움과 추함은 모두 각각의 사람이 선택하고 행동한 결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러한 말씀을 듣고 나니 비로소, 사람 모두에게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희망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았다. p. 76

 

 

 

  지난 7년간 유배지 강진의 다산에서 보낸 아버님의 시간은 놀랍기만 했다. 나의 ㅣ간이 그저 흘려보낸 시간이었다면 아버님의 시간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것을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운명이 내려준 형벌에 순응하지만은 않은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아버님의 시간은 연동 운동을 하며 끊임없이 나아가는 창자의 굵다란 관과도 같았다. 관의 벽에는 건강한 사람의 창자처럼 부드럽고 탐스러운 융털이 나 있었다. 아버님의 사색과 경험, 만남과 추억들이 올올이 아로새겨져 있는 융털은 시간의 관을 늘였다 당겼다 하며 우직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p. 81

 

 

 

설사 운명이란 것이 그 어떤 무기를 손에 들고 위협해도,
사람은 그저 맥없이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예전에 아버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가난과 곤궁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고생하다 보면 마음이 단련되고 지혜로워져 사람과 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알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폐족에서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세상과 사물의 진면목을 바르게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중략)
  그러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에야 아버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특히 초당의 아버님 곁에 있는 동안 지난 일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고 생각도 많이 자랐습니다. 하늘은 견디기 힘든 시련을 내리면서도 그 가운데 또 사람을 자라게 해 주고 깨달음을 얻게 해 주니, 그 오묘하고 무궁한 뜻을 제가 어찌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제 안에서 일어난 변화로, 그 뜻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따름입니다. (중략)
  흐르는 물처럼 순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세상의 미끈한 겉면만 바라보고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한 번쯤 곤두박질쳐져 본 사람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그 사이사이 세세하게 잡힌 세상의 주름까지도 눈에 보입니다. 아버님은 세상의 주름, 곧 나라와 백성의 생생한 현실을 보아야만 비로소 사람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왜 학문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저는 이제야 비로소 어렴풋하게나마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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