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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읽는 책

「유원」

by *소은* 2021. 11. 4.

「유원」 백온유, 창비, 2020

 

▨ 그들이 회복하는 방법 ▧

 

  「유원」에 등장하는 아이들 유원, 수현, 정현을 만나면서 안도했다. 미숙한 부모들을 감당해내며 그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의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이 따끈해진다. 

  불의의 화재로 인해 유원은 6살의 나이에 언니의 손에 의해 이불에 싸여 아파트 11층에서 던져지고, 그 아이를 받아내 국민적인 영웅이 된 아저씨는 그로 인해 반 불구가 되어 그 가족의 주의를 계속해서 맴돈다. (그 과정에서 언니는 살아남지 못했다.) 마냥 착하기만 한 유원의 부모는 점점 무례해지는 아저씨의 부탁을 거절하기 못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언니와 아저씨에 대한 미움이 커져가면서 유원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언니의 목숨을 담보로 살아남은 아이, 한 가장을 평생 불구로 만들며 살아남은 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청소년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아이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유원은 수현과 정현을 만나 비로소 당당히 홀로서기를 감행한다. 자신과는 다르게 되는대로 마구 살아가는 수현, 그러나 그만큼 투명하고 밝은 수현과 마음을 나누며 유원은 아픈 마음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미숙한 어른들도 결국 그들에게 일침을 듣게 되는데, 과연 그들의 삶이 그 후에 달라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변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큰 손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어디론가 숨고 싶어 진다.

 

  아저씨가 내 주변을 맴돌며 우리를 착취하는 방식은 누군가에게 전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특출하다. 그 근면함과 성의를 보면 아저씨의 마음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끈기와 집요함은 어느 옛날 영화에서 본 섬뜩한 모성과도 닮은 것 같다. 아저씨는 나를 온몸으로 받아 낸 이후에, 나라는 존재에게 그런 모성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고 한때는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아저씨의 의도를 가늠하려고 노력한다. 일부러 괴롭히는 것 같기도, 점진적으로 복수하는 과정 같기도 하다. p. 53

 

나는 더 나태하게 살아도 됐을 것이다. 
사고가 없었다면.
나태하게 살면서도 죄책감을 덜 느꼈을 것이다. 실수를 두세 번 반복해도 초조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꾸만 무언가에 쫓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p.126

 

 

  "그 사람 대신에 내가 부끄러웠지. 어린 눈에도 아빠가 구걸하러 다니는 걸로 보였거든. 지금 생각해 보니까 구걸이 아니라 협박이었구나. 어쨌든 나는 누구에게나 감정의 할당량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 근데 아빠는 그런 걸 잘 못 느끼나 봐. 부끄러움도, 미안함도, 분노도 모두 엄마랑 나랑 정현이 몫이었어." p. 220

 

 

  죄책감의 문제는 미안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처럼 번진다는 데에 있다. 자괴감, 자책감, 우울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 가게 했다. 그런 내가 너무 무거워서 휘청거릴 때마다 수현은 나를 부축해 주었다. p. 247

 

 

  패러글라이더와 함께 나는 도움닫기로 10미터쯤 달렸다. 장비의 무게가 무거워 사실은 거의 끌려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주춤할 틈도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차, 하는 순간 나는 이미 날고 있었다. 어딘가의 바깥에서 드디어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바람의 저항을 받았다. 이렇게 가벼워져 본 적은 처음이었다. 아래로 울창한 숲이 펼쳐지다가 어느샌가 바다 위를 날았다. 바다가 이렇게 넓구나. 바닷물은 푸르게 반짝거렸다. 패러글라이더가 내 뒤에서 나는 단단히 받쳐 주고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온전히 내가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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