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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읽는 책

「우아한 거짓말」

by *소은* 2021. 8. 31.
「우아한 거짓말」 김려령, 창비, 2009

▨ 사랑이 고픈 아이들 ▧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영화 <완득이>의 원작으로 많이 알려진 김려령 작가의 또 다른 책 <우아한 거짓말>은 아이들의 왕따 문제와 그로 인한 자살이라는 무거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청소년 소설이다. 늘 착실하고 온순하던 천지가, 멀 사달라고 떼쓰는 법도 한번 없던 천지가 어느 날 아침 MP3플레이어를 사달라고 조르더니 그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게 너무 의아했던 천지의 엄마와 언니 만지는 천지의 주변을 파헤치고 단짝으로 알고 있었던 화연의 오래된 악행을 알게 된다. 책에서 화연이가 천지를 왕따 시키는 모습이 너무 치밀하고 대담해서 놀랐는데, 소설이라 과장되게 표현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렇지 만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왕따로 인한 자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으니까.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나올 나이에, 인생을 돌아 보았을 때 가장 푸르르고 빛나야 하는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으면 안되는 아이들의 아픔은 얼마나 큰 것인가. 그렇다고 모든것을 화연이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천지를 괴롭히고 죽음으로 몰고 간 화연이 또한 사실은 사랑이 고프고 마음이 아픈, 그러나 그 아픔을 이야기할 곳을 찾지 못한 가여운 아이일 뿐이다. 화연이가 그렇게 된 것은 순전히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러니 그로 인해 죽음을 당한 천지의 죽음은 누구를 탓해야 할까.



알아도 가슴에 담아둘 수는 없었을까?
가끔은 네 입에서 나온 소리가 내 가슴에 너무 깊이 꽂혔어.
그래도 용서하고 갈게. 처음 본 네 웃음을 기억하니까.

다섯 개의 봉인 실 중 네 번째.


화연은 희미하게 웃었다. 지나치게 바른 천지가 숨 막혔다. 지겨웠다. 관상용이자 화풀이용 친구 관계도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충돌에 익숙하지 않아 그냥 참아버리는 아이.이런 아이 하나쯤 왕따로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반 아이들이 이미 괴롭히고 있는 왕따는 재미없었다. 새로 만들어야 했다. 티 나지 않게 교묘하게, 그리고 싹 빠지기. 그게 더 흥미로웠다. 그런데 천지는 늘 왕따에서 살아남았다. 성공 직전까지 갔다가도 번번이 실패했다. 성공하지 못한 계획.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반사적 불이익이 서서히 화연에게 나타났다. 초조했다. p. 23


아시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사람의 생을 OX 퀴즈처럼 안다와 모른다, 로 결정지으면 안 됩니다. 당신은 항상 반듯한 가르마에 긴 머리를 하고 시립도서관을 자주 찾는 남자일 뿐,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누군가 내게 당신에 대해 물으면 " 그 긴 머리 아저씨 압니다."라고 해야 할까요. 다시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를 모릅니다. 당신이 자주 보던 내 그림자는 이제 보이지 않을 겁니다. 잠시 숨겼습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오늘 나를 따라다니는 검은 그림자가, 내일은 검은 바다가 되어 나를 삼켜버릴 것이라는 걸. 그래서 미리 가려고 합니다. 당신은,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p.213

나는 더 이상 착한 아이가 아닙니다. 때문에 모두 용서하고 떠날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이제 나쁜 아이가 되어서 갑니다. 용서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보다 편하고 싶어 떠나는 게 아닙니다. 내 몸이 더 이상 이곳을 원하지 않아서 떠납니다. 분명히 말하고 가겠습니다. 용서하지 않고 떠난다고...... 하지만,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른 세상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 이름을 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래도 나와 오랫동안 만나면서 함께 웃기도 한 사람들이니까요. 미운 마음만은 버리고 기고 싶습니다. 이기적이지만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털실 뭉치를 남겼습니다. 사과는 하고 가겠습니다. 온전하게 용서하지 못하고 가서, 미안합니다.

이제, 가야겠습니다.
내 몸이 너무 무거워서, 그만 가야겠습니다...... p.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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