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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있는 일상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

by *소은* 2021. 7. 13.

나의 첫 스콘

 

  스콘을 만들었다.
빵 굽기 최하 레벨이 스콘이므로 첫 베이킹 도전으로는 안성맞춤이다.

  내가 생각하는 음식 만들기의 문제점은 이거다. 해보면 별거 아닌데 해보기가 싫다는 것. 나는 결혼해서 음식을 처음 시작했으니 그 경력(?)이 16년 차다.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번갈아 해 먹던 결혼 초에 비하면 지금은 요릿집 수준이다. ( 아, 그렇다고 내 요리가 요릿집 수준의 요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여전히 무얼 해 먹지가 인생 최대의 난제이지만 두 가지 음식으로 돌려 막기를 하던 그때와 비교하면 그래도 꽤 양호해졌다는 뜻이다. 하긴 16년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므로.

  여하튼 모든 요리는 해보면 별거 아닌데 그게 참 하기가 싫어서 문제다. 준비과정도 너무 많고 나오는 설거지도 한가득인 것에 비해 먹는 건 순식간이라 허무하다. 잠깐 행복하자고 드는 품이 너무 크다. 그런데 해보면 해볼수록 도전정신이 생기는 게 또 요리 같다. 날 것의 식재료로 먹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행위 자체가 어쩔 땐 신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지고 있는 식재료를 어떻게 잘 활용해서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느냐가 음식을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사설이 길었다. 그래서 어쨌든 나는 스콘을 만들었다. 예상대로 별거 아니었다. 이렇게 간단한데 왜 여태 못 만들어 먹었나 억울할 정도다. 반죽이 질게 되어서 망했구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맛있게 잘 구워졌다. 다시 해보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카페에서 파는 주먹만 한 스콘 하나에 2,500원 정도 하니, 난 오늘 2만 원어치 빵을 구운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들어간 재료값을 따져보니 2,000원 정도면 될 거 같은데 엄청 비싸게도 파는군 이라는 생각도 함께.

  무엇보다 내가 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 기쁘다. 코로나로 집밥을 더 자주 해 먹어야 하는 아주 괴로운 상황을 맞아 본의 아니게 도전하게 된 요리의 종류가 늘었다. 확실히 상황이 사람을 움직인다. 샐러드 드레싱으로 쓸 재료들을 갖추게 되었고 샐러드를 해 먹다 보니 곁들일 리코타 치즈를 만들어보게 되었다. 비빔국수를 뚝딱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고, 각종 파스타도 도전해보고 있다. 물론 내가 한 음식보다 남이 해주는 밥이 더 맛있고 사 먹는 음식이 더 더 편하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아니 해본 음식이 늘어간다는 건 사는데 유용한 작은 무기를 하나씩 장착하는 것과 같다.

 

  당분간 각종 스콘을 구워보려고 한다. 열 번 정도 만들어 보면 레시피 없이도 만들 수 있게 될까를 기대 하면서.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엔가 내가 좋아하는 쿠키도 척척 구울 수 있는 날이 올까. 빵이 익어가는 냄새가 집안에 퍼지는 기분좋은 온기를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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