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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있는 일상

경력단절 벗어나기

by *소은* 2021. 7. 4.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탁해 살기로 한 이상 결혼 이후의 삶은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펼쳐진다. 결혼한 여성이 임신과 출산, 육아의 테두리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아니 그 과정을 안정적으로 거치기 위해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출산을 한 다음의 선택지는 둘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으로 살지, 육아에 전념하는 전업주부로 살지를 정한다. 나는 한 번의 유산 경험이 뼈아팠고, 내 아이는 내가 키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두 번째 임신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케이스이다. 그렇게 16년이 흘렀다. 나는 아이 둘을 낳았고, 작은 존재들은 세월을 발라먹고 쑥쑥 커나갔다. 그러는 사이 나는 어느새 40대 중반이 된다.

 

  경제 활동을 해야 했다. 다시 일을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결정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은 녹녹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출산 전에 하던 일을 다시 하는 건 언감생심 불가능했다. (그 분야의 특성상 더 그랬다.) 그렇다면? 내가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최저임금을 받는 단순노동이 전부였다. 상대적으로 아줌마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마트 캐셔 일도 42세가 넘으면 이력서도 못 넣는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절망했다. 책이나 매스컴에서 봐왔던 경력단절의 아픔을 몸소 체험하게 된 것이다. 

 

  준비가 필요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즐겨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2년 가까이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 그저 헤매었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일을 하려면 건강해야 하니 운동으로 몸을 다져놓자는 생각에 요가와 필라테스를 열심히 했고 평소 책 읽는 시간을 늘렸다. 막막하고 불안한 시간이었다. 그냥 타성에 젖어 주저앉을 수도 있는 일이었고, 끝까지 내 일을 찾지 못할지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나에게 쌓여가던 무언가가 있었던 걸까. 줄곧 내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은 점이 유효했던 걸까. 어느 날 불현듯 아이들 책 수업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신기하게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전 정신이라고는 1도 없는 내가 어떤 분야에 자신감을 갖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겐 엄청난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정하고 나니 한순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록 그 결정 뒤에 행해져야 할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우선 자격증을 따야 했다. 관련 공부와 자격증은 아이를 가르칠 나의 역량을 높이는 동시에 자신 있게 아이들을 만날 나를 위해 더 필요한 과정이다. 코로나로 인해 강좌 개설이 1년 이상 지체되고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올해에 들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작년에 따놓은 자격증으로 초등학교 디베이트 프로젝트 수업을 하게 된다. 실로 내가 정한 나의 새로운 일의 첫 번째 과제인 것이다. 6주 동안 5학년 3개 반에 독서디베이트를 가르치는 일이다. 무턱대고 해보겠다고 공수표를 날린 뒤, 불안과 걱정으로 잠 못든 밤이 며칠인지...... 직장생활 때 스트레스로 인한 소화불량, 두드러기, 불면증으로 고생했던 일이 떠오르면서 '아~ 보통일이 아니구나' 새삼 느꼈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와는 또 다른 긴장과 걱정이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어찌어찌 한주 한주 미션을 수행하듯 수업을 해나가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한주 만을 남겨두고 있다. "다음 주에 선생님이랑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서운해요."라고 말해줬던 한 아이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미숙했을 것이 분명한 내 첫 수업이 그래도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을까. 내가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까지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까. 지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이 일을 오래 해나갈 수 있을까.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많은 걱정들이 앞서지만, 반면에 딱 그만큼 설레기도 하다.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시간은 이제 그날이 그날 같았던 예전의 나날들과는 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내가 만나게 될 아이들과 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길 바란다. 경력 단절 그까짓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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