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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읽는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by *소은* 2021. 7. 9.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어크로스 엮음, 2018

 

▨ 여생은 그저 덤이다 ▧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의 국내 첫 저서다. 책은 지난 10여 년간 그가 일상과 사회, 학교와 학생, 영화와 책 사이에서 근심하고 애정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최근에는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에세이도 출간되었다.

 

 책을 읽고 보니 저자는 <추석이란 무엇인가>이라는 칼럼으로 이미 유명한 칼럼니스트였다. 약간 냉소적이기도 하지만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글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도 그런 것이 저자는 재미있는 글쓰기를 표방한다.

 

  그냥 한번 써 내볼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제출한 영화평론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갖은 자는 무얼 해도 잘 되는 것인가. 이 책에는 당선작을 포함한 4편의 영화평론이 실려있는데, 솔직히 읽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다. 수준이 너무 높달까. 그런데 이해될 때까지 읽고 싶고 영화가 보고 싶어 졌다. 영화를 보는 통찰과 삶으로의 적용과 철학과 조우시키는 능력에 감복했다.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기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중에

불행하지 않기를 원하고 행복만을 좇는 것보다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는 저자의 글에 깊게 공감했다.

' 재미있는 드라마는 또 언제 시작하지', '주말에 어느 맛집에 가지'와 같은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 수 있길......

 

 

 

  밥을 먹다가 주변 사람을 긴장시키고 싶은가. 그렇다면 음식을 한가득 입에 물고서 소리 내어 말해보라. "나는 누구인가." 아마 함께 밥 먹던 사람들이 수저질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당신을 쳐다볼 것이다. (중략) 
  추석을 맞아 모여든 친척들은 늘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의 근황에 과도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취직은 했는지, 결혼 계획은 있는지,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인지. 살은 언제 뺄 것인지 등등.  그러나 21세기의 냉정한 과학자가 느끼한 연애편지를 쓰던 20세기 청년이 더 이상 아니듯이, 당신도 과거의 당신이 아니며, 친척도 과거의 친척이 아니며, 가족도 옛날의 가족이 아니며, 추석도 과거의 추석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질문은 집어치워주시죠'라는 시선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한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다.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하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아버지가 "손주라도 한 명 안겨다오"라고 하거든 "후손이란 무엇인가?". "늘그막에 외로워서 그런단다"라고 하거든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가족끼리 이런 이야기도 못 하니?"라고 하거든 "가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칼럼이란 무엇인가.
 - <추석이란 무엇인가> 중에

 

 

 

 

  그렇다면 잘 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쉬기 위해서는 일단 열심히 일해야 한다. 무엇엔가 열심히 종사하지 않은 사람은, 잘 쉴 수도 없다. 열심히 종사하지 않은 사람의 휴식에는 불안의 기운이 서려 있기 마련이다. 쉰다는 것이 긴장의 이완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오직 제대로 긴장해본 사람만이 진정한 이완을 누릴 수 있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학생에게, 그 긴장은 곧 공부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정채진 기간 내에 박사학위를 끝내야 하는 학생은 얼마나 긴장되는가. 필자가 박사 논문을 끝내자 지도하셨던 선생님 한 분이 말했다. 이제 얼마간 쉬게나. 나는 약간의 복수심을 섞어 대꾸했다. 그럼 선생님, 이제 쉬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쉬는 법을 공부하렵니다. 그때 선생님은 오랜만에 웃었고, 우리는 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대학/원 교육의 맹점에 대해서 입을 모아 개탄했다.
  내가 권하는 쉬는 방법은, 우선, 연인의 무릎을 베고 자는 것이다. 그/녀의 무릎에 머리통을 대는 순간, 젖과 꿀이 질질 흐르는 달콤한 휴식이 당신을 덮칠 것이다. 그러나 연인은 가장 필요할 때 우리에게 없는 법이다. 연인이 우리 곁에 없을 때, 가장 적은 노력으로 최대의 휴식을 얻는 방법으로, 방바닥에 뒹굴면서 만화책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 <만화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중에

 

 

 

 

  Q. 학자가 되면 좋은 점은 없나요?
  "어느 시점이 되면, 내가 책을 좋아할 분 아니라 책도 내심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죠. 나도 책을 읽으면 행복하지만, 책도 나에게 읽히는 게 분명 행복할 거야, 라는 충족감이 들죠. 그리고 직장인들이 월요일 아침에 허겁지겁 출근할 때, 항문을 열고 '월요일이란 무엇인가'하고 소리를 지를 수 있어요." 
-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요> 중에

 

 

 

 

  Q.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할까요?
  호모 사피엔스가 노려볼 만한 어떤 고양된, 성스러운, 초월적인 계기가 세 가지 정도 있다고 보는데 그중 하나가 책이 아닌가 합니다. 책이라는 걸 읽는 행위 자체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잖아요. 특히나 책을 통할 때는 죽은 저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살아 있는 저자는 시샘을 할 수 있잖아요 (웃음).  왜 서양 회화에 <수태고지> 그림 있지요. 성서를 보고 있거든요. 그 자체로 책이 성스러움과 연결이 되어 있는데 요즘처럼 책이 많아지고 흔해진 마당에 책이 어디 그렇던 가요. 지난여름 여행지에서 들른 미술관에서 책 읽는 사람을 그니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어떤 여성이 점자책을 읽고 있더라고요. 순간 그랬죠. 아, 오늘날 책을 매개로 성스러운 그림을 그리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겠다...... 아무튼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 물으면 사실 안 읽어도 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드는 정말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요. 
- <책이란 무엇인가> 김민정 시인과의 대화 중에

  책을 열심히 읽고 있고 읽은 책을 블로그에 정리하고 있는 내가 요즘 드는 의문 하나가 바로 이런 종류였다. 나는 책을 왜 읽고 있는 걸까? 잘 읽고는 있는 걸까? 책을 읽는 행위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하는......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그저 아주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는 데에 책 읽기가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니 아무 생각 말고 닥치고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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