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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

by *소은* 2021. 6. 16.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글 그림, 김난주 옮김, 비룡소, 2002

 

▨ 내가 택하는 내 삶 ▧

 

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임금님을 싫어했습니다.

임금님은 싸움 솜씨가 뛰어나 늘 전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멋진 바구니에 담아 전쟁터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임금님은 전쟁이 한창인데도 고양이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임금님은 전쟁을 그만두고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성의 정원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서커스단 마술사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서커스 따위는 싫었습니다

마술사는 날마다 고양이를 상자 속에 집어넣고 톱으로 쓱싹쓱싹 상자의 반을 잘랐습니다. 

그러도고 까딱없는 고양이를 상자에서 꺼내어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마술사는 실수로 고양이를 정말 반으로 쓱싹쓱싹 자르고 말았습니다.

마술사는 반으로 잘린 고양이를 두 손에 들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습니다.

마술사는 서커스단의 천막 뒤쪽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아이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여자 아이는 고양이를 업기도 하고 꼭 껴안고 자기도 했습니다.

울 때는 고양이의 등에다 눈물을 닦았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여자 아이의 등에서 포대기 끈에 목이 졸려 죽고 말았습니다.

머리가 덜렁거리는 고양이를 안고 여자 아이는 온종일 울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뜰 나무 아래에다 묻었습니다.

고양이는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한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습니다. 

도둑고양이였던 것이죠.

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쨌든 고양이는 멋진 얼룩 고양이였으므로, 멋진 얼룩무늬 도둑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암고양이들은 모두들 백만 번 죽어 본 얼룩 고양이의 신부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마리, 고양이를 본 척도 하지 않는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난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라고 말해도

하얀 고양이는 "그러니." 하고만 대꾸할 뿐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좋아했던 고양이는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앞에서 빙그르르, 공중 돌기를 세 번을 하여도 관심을 안보이자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라고 물었습니다.

"으응." 

하얀 고양이는 대답했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 늘 붙어 있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많이 많이 낳았습니다.

고양이는 이제

"난, 백만 번이나......."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할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새끼 고양이들이 자라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함께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하얀 고양이는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울었습니다.

아침이 되고 또 밤이 되고, 어느 날 낮에 고양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백만 번 죽고 백만 번 다시 태어났으나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고양이. 

임금님의 고양이로, 뱃사공의 고양이로, 마술사의 고양이로, 도둑의 고양이로...

또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지만

그리고 그때마다 끔찍한 죽음을 맞이 하지만

죽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던 고양이.

그런 고양이가 처음으로 그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자신만의 고양이가 된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러고 나서 늘 곁에 있고 싶은 하얀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자기 자신보다 더 좋은 존재들이 생기고서야

고양이는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되고,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된다.

하얀 고양이가 떠났을 때 비로소 처음으로 울게 된 고양이의 눈물이 처절하다.

죽도록 아프고 슬프지만 그래도 진정한 한 생을 살았으니 

이제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고양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다.

 

누구누구의 고양이로 백만 번을 살아도 끝내 채워지지 않았던 상실감과 권태로움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 그래서 다른 이도 사랑할 힘이 생겼을 때 마침내 상쇄되어 부서진다.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은 역시 영원 불멸의 명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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