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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엄마의 초상화」

by *소은* 2021. 5. 26.

「엄마의 초상화」 유지연, 이야기꽃, 2014

 

▨ 엄마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

 

 

 

나는 엄마를 그리고 있어요. 엄마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누군가 미영씨를 그리고 있어요. 미영씨는어떻게 생겼을까요?;

 

여기 엄마를 그리는 두 손이 있다.
내가 그리는 엄마와 또 다른 사람이 그리고 있는 엄마의 얼굴. 아니 미영 씨의 얼굴.

 



익숙한 엄마의 모습 속에는 낯선 미영 씨도 살고 있어요.

 

내가 알고 있는 익숙한 엄마의 모습과 어딘지 낯선 엄마의 얼굴, 아니 미영 씨의 얼굴.




엄마의 갈라진 입술 틈새로 보이는 빨간 립스틱은 꺼지지 않는 미영씨의 빨간 열정이에요.

 

엄마가 갈라진 입술 틈새로 채워 넣었던 빨간 립스틱은 뜨거운 열정의 무대의 꽃장식이 될 수 있었고,




엄마는 파마머리로 성긴 세월을 감추고 미영 씨는 멋진 모자로 성긴 마음을 감싸요.

 

늘 같은 스타일의 뽀글뽀글 파마머리는 사실 멋진 모자들로 하루가 다르게 꾸미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의 울퉁불퉁한 발은 늘 아래에 있지만 미영 씨의 자존심은 항상 높은 곳에 있지요.

 

가족이 아프기라도 한다면 그녀의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겠지만 사실은 늘 구름위에 있고 싶은 미영 씨이다.




엄마의 손이 바짝바짝 메말라갈수록 미영 씨에게선 반짝반짝 빛이 나요.



내가 아는 엄마의 모습 뒤엔 상상치도 못할 미영씨가 있을지도 몰라요.



엄마의 일상은 자칫 지루해 보여도 미영 씨는 아주 재밌는 사람일 수 있어요.

 

엄마는 나른한 낮잠속에서도 사실은 빨간 머리 앤과의 담소를 꿈꾸고 있었을 지도......




엄마는 생선 머리만 먹는 미식가인 것 같지만 미영 씨는 두려움을 모르는 탐험가일 수 있지요.



엄마는 지지 않는 꽃처럼 우리를 응원해 줄 것 같아도 미영 씨는 언젠가 꽃을 찾아 떠나 버릴지 몰라요.



엄마는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집이지만 미영 씨는 집이 아니고 싶을 때도 있을 테니까요.



엄마는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자랑스러워하지만 미영 씨는 내가 그린 초상화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엄마는 여행을 꿈꾸었고 미영 씨는 드디어 결심했지요.



그곳에서 맘에 쏙 드는 초상화를 그려 왔어요.




그렇게 해서 두 개의 초상화를 갖게 되었답니다.




둘은 서로 다르게 생겼어요. 하지만 하나뿐인 우리 엄마, 미영 씨입니다.

 


 

"엄마도 여자다". 이런 말이 있다.
그런 당연한 명제를 우리는 왜 자꾸 되내어야 하는 걸까.

여자로 태어나 소녀로 자라 여인을 거쳐 결혼을 해 아이를 낳는 순간
여자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고 그저 엄마로 살기를 자처한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이름도 잊고 마는 이 세상의 많은 엄마들.

나의 엄마는 자신의 이름을 찾자마자 그 꿈을 한껏 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마음이 아팠으나 떠올려 보니 그와 동시에 나도 그런 엄마였다.
늘 여행을 꿈꾸고 사실은 하고 싶은 게 많은 나 역시
미영씨의 모습은 감춘 채 엄마의 모습으로만 꾸역꾸역 살아온 건 아닐까.

드디어 결심을 하고 여행 가방을 챙겨
파리의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미영 씨의 모습이 얼마나
유쾌한가.

딸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엄마의 모습보다
파리에서 그려온 미영씨의 초상화가 더 마음에 드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일.

페이지 왼쪽의 엄마의 그림과 오른쪽의 미영씨의 그림이 확연하게 대비되면서
그러나 세심하게 연결된 그림을 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박박 긁어 표현한 엄마의 판화 이미지들은 어두운 색과 거친 선들로 팍팍한 그녀의 인생을 떠올리게 하고
오른편의 화려하고 상상력 가득한 재미있는 그림들엔 미영 씨의 소망이 가득하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 엄마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어서 빨리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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