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by *소은* 2021. 4. 4.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책읽는 곰, 2021

 

 

 

책을 읽으며 울어버렸다.

나이 들어 눈물이 많아졌다고는 생각했는데, 그림책을 읽고 울 줄이야......

책을 덮고도 오랜 시간 먹먹하고 마음이 아팠다. 

소년의 감은 눈이 아릿하다.

 

포스팅으로도 그 감동이 전해질까?

 

 

 

 

 

눈을 떠요.

아침마다 낱말들의 소리가 들려요.

나를 둘러싸는 소리가 들려요.

 

 

 

 

 

 

내 방 창 너머로 보이는 소나무의 스 - .

소나무 가지에 내려앉은 까마귀의 끄 -.

아침 하늘에서 희미해져 가는 달의 드 -.

나는 아침마다 나를 둘러싼 낱말들의 소리를 들르며 깨어나요.

그리고 나는 그 어떤 것도 말할 수가 없어요.

 

 

 

 

 

소나무의 스-가 입안이 뿌리를 내리며 혀와 뒤엉켜 버려요.

까마귀의 끄-는 목구멍 안쪽에 딱 달라붙어요.

달의 드-는 마법처럼 내 입술을 지워 버려요.

나는 그저 웅얼거릴 수밖에 없어요.

 

 

 

 

 

 

나는 돌멩이처럼 조용해요.

학교에서는 말을 할 일이 없기를 바라며 맨 뒷자리에 앉아요.

선생님이 나에게 무언가 물어보면 모든 아이들이 나를 돌아다봐요.

 

 

 

 

 

 

아이들은 내 입에서 혀 대신 소나무 가지가 튀어나오는 걸 보지 못해요.

아이들은 내 목구멍 안쪽에서 까마귀가 까악 까악 우는 걸 듣지 못해요.

아이들은 내가 입을 열 때 스며 나오는 달빛을 보지 않아요.

 

 

 

 

 

 

 

아이들은 내가 저희들처럼 말하지 않는다는 것에만 귀를 기울여요.

아이들은 내 얼굴이 얼마나 이상해지는지만 봐요.

내가 얼마나 겁을 먹는지만 봐요.

 

내입은 꼼짝도 하지 않아요.

내 입은 아침의 그 낱말들로 가득 차 있어요.

 

 

 

 

 

 

아빠는 발표를 잘 못한 나에게 "우리 어디 조용한 데 들러다 갈까" 하고 말해요.

 

 

 

 

 

 

 

아빠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갔어요.

 

하지만 발표 시간이 자꾸만 떠올라, 배 속에서 폭풍이 일어난 것 같아요.

두 눈에 빗물이 가득 차올라요.

 

 

 

 

 

 

아빠는 내가 슬퍼하는 걸 보고 나를 가까이 끌어당겼어요.

그러고는 강물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나는 강물을 보았어요.

 

 

 

 

 

 

 

물거품이 일고

굽이치다가

소용돌이치고

부딪쳐요.

 

 

 

 

 

 

 

 

 

 

 

 

 

 

아빠는 말했어요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고.

 

나는 울고 싶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려요.

그러면 울음을 삼킬 수 있거든요.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나는 말하기 싫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려요.

그러면 말할 수 있어요.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나를 둘러싼 낱말들을 말하기 어려울 때면 그 당당한 강물을 생각해요.

소용돌이치고 물거품을 일으키고 굽이치고 부딧치는 강물을요.

 

강물도 더듬거릴 때가 있어요.

내가 그런 것처럼요.

 

 

 

 

 

 

학교에 가서 발표 시간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서 말했어요.

그 강에 대해서 말했지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소년은 말을 더듬는다.

소나무의 스- 가 입안에 맴돌지만 소리가 되어 뱉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그가 말할 차례가 오면 이미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그러면 소년은 더더욱 소리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우리는 왜 '나와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마음이 아팠다.

 

그런 소년에게 아빠가 말했다.

"너는 강물처럼 말한다" 고.

소용돌이치고 물거품을 일으키고 굽이치고 부딪치는 강물처럼.

그러나 어느새 잔잔해져서 부드럽게 일렁이며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말이다.

 

어떤 이는 새처럼 말하고, 어떤이는 꽃과 같이 말하는 것처럼 소년은 강물처럼 말한다.

그걸 온몸으로 느낀 소년은 용기를 얻었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을 빌어서 이런 글을 남겼다.

말을 더듬는 건 두려움이 따르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일이에요. 물론 나도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말하고 싶어요. 우아하게, 세련되게, 당신이 유창하다고 느끼는 그런 방식으로요.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에요.
나는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말을 더듬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미쳐 생각도 하기 전에 이미 입 밖으로 나간 후이다.

그래서 말을 못 해서 얻는 답답함이나 힘듦보다는 섣불리 뱉은 말로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일이 더 흔하다.

또는 내가 한 말이 상대방에게 온전히 가 닿지 않아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또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강물처럼 말하고 또는 폭포처럼 말해서 내 말이 내가 원하는 곳에 무사히 가 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작가는 말을 더듬어 힘들던 어린 시절을 거쳐 이제는 아름다운 언어로 세상을 표현하는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말을 더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한다.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차곡차곡 쓰여져 시가 되었을 것 같다.

작가의 시를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나는 강물처럼 무엇 무엇을 하는지.

 

 

 

 

나는 강물처럼 꿈을 이룬다.

반응형

'그림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의 초상화」  (18) 2021.05.26
「빨간 나무」  (14) 2021.04.20
「곰씨의 의자」  (4) 2021.03.21
「여기보다 어딘가」  (6) 2021.03.05
「빨간 벽」  (11) 2021.02.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