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를 위해 읽는 책

「아무튼, 비건」

by *소은* 2021. 6. 9.
「아무튼, 비건」 김학민, 위고, 2018

▨ 당신도 연결되었나요? ▧


는 채소와 과일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기도 사랑한다. 곱창, 선지, 닭발 같은 음식도 즐기며, 비계가 두둑한 삼겹살이나 마블링이 좋은 스테이크, 매콤한 닭볶음탕, 어느 하나 내 인생에서 빠트릴 수 없는 메뉴들이다. 이런 내가 비건 책이라니... 아마 독서토론 모임에서 선정된 책이 아니었음 들춰 볼 일이 없었을 책이었겠으나,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읽고야 말았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왜냐하면 읽는 내내 나는 작가에게 설득당했으니까.
작가는 우리가 왜 비건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따져가며, 그리고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이야기해 나간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의 눈으로 본 세상은 너무도 비인간적이고, 비환경적인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으니까. 그 끔찍한 현실에 큰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테니 그것도 이해가 된다.
"아 어쩌지? 내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비건 책을 읽고 설득당했으나, 비건이 될 수 없는 나는 아마도 고기를 먹을 때, 다운 점퍼를 입을 때, 가죽 구두를 신을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불편함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ㅠㅠ

작가는 우리가 이렇게 동물들에게 무심(?)할 수 있는 이유를 '타자화'로 이야기했다.

타자화란 뭘까?

나와 나, 우리와 남을 가르는 행위다. 내가 동일시하고 공감하는 우리와, 내가 멀리하고 싶은 남을 구분한 후, 남을 우리의 울타리 바깥으로 밀어내는 행위다. 그다음엔 담장을 한층 더 높이 친다. 그때부터 남의 일은 나와 무관해진다.
타자화에는 상향과 하향,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상향의 타자화 : 질투나 숭배를 할 때 한다. 이때의 남은 나와 근본부터 다르고, 이미 격차는 계급처럼 고정되어 있으므로 범접할 수 없다고 단정한다. 저렇게 대단한 남과 내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면 괴로우므로 이렇게 정리해버린다. 예) 못난 나/잘난 남, 부모 잘못 만난 나/부모 잘 만난 남, 평범한 나/특출한 남

하향의 타자화 : 무시와 배제를 할때 한다. 가장 흔한 기법으로 '동물화'가 있다. 누군가를 짐승 취급할 때 가장 손쉽게 타자화할 수 있다. 예) 사람을 동물에 빗대어 비하하는 온갖 욕설, 유태인을 짐승으로 여긴 나치.

바로 이 '동물화'에 나는 주목한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회에서 노예가 사라진 이 시대에, 동물은 사회계층에서 가장 낮은 위치를 점유한다.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최하층의 동물을 한 단계라도 승격시켜 우리의 윤리가 적용되는 테두리 안으로 포함시킨다면, 동물화는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동물을 소중히 다루는 게 보편화되어 '동물처럼 다룬다'는 말이 지금처럼 폭력을 상기시키는 대신 '배려하면서 친절하게 대한다'는 뜻으로 바뀌면 우리의 윤리 체계에도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말의 뜻은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다. p. 10

우리가 지구 어느곳에서 학대받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분노를 일삼지만, 같은 학대를 동물이 받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말한 이 '타자화'의 일환이다. 나는 동물들을 그저 소중한 식자재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고통 속에 사육되어서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을 나는 철저히 타자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물은 영혼이 있는 존재이며, 고통을 느끼고, 그들만의 언어도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지못할 뿐이다.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그래서 작가는 얼굴이 있는 존재는 먹지 않는단다.

비건이란 단순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비건은 동물로 만든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사람이자 사회운동이다. 고기는 물론, 치즈나 우유 같은 유제품, 달걀, 생선도 먹지 않으며, 음식 이외에도 가죽, 모피, 양모, 악어가죽, 상아 같은 제품도 사지 않는다. 좀 더 엄격하게는 꿀처럼 직접적인 동물성 제품은 아니지만 동물을 착취해서 얻은 제품도 거부하며, 같은 의미에서 돌고래쇼 같은 착취 상품도 거부한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게 음식이니, 엄격한 채식이라고 알고 있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p. 15

비건은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뛰어넘어 그것으로 비롯된 모든 환경 파괴의 행위를 거부하는 것을 통틀어 말한다. 비건이라면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비행기를 수시로 타며 여행을 즐기는 이가 있다면 이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비건임을 자처하면서 성차별, 인종차별을 서슴지 않은 사람들도 거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 비건이 되는 것은 산업과, 국가와, 영혼 없는 전문가들이 단절시킨 풍부한 관계성을, 어린아이였을 때 누구나 갖고 있던 직관적 연결고리를, 시민들이 스스로의 깨우침과 힘으로 회복하는 하나의 사회운동이다. p. 16

'건강하다'는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건강함을 미덕 중에 으뜸으로 치고, 사람도 건강한 사람이 가장 매력 있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건강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유심히 본다. 하지만 건강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몸의 건강은 그중 일부분인 뿐 건강의 뜻은 훨씬 넓다. 신체는 건강해도 전혀 건강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도 많다. 헬스장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 건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섬세한 개념이다. 혼동하면 안 된다. 건강함과 건전함은 다르다. 건강하지만 건전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p. 35

"넌 한국 사람들이 뭘 믿는다고 생각해?
미쳐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에 머뭇거리는데, 친구는 이미 멋진 답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우리가 믿는 건 신도 아니고, 국가고 아니고, 가족, 친구, 학벌, 돈, 부동산, 성공도 아냐. 이 모든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건 '세상은 안 변한다'는 믿음이야. 어차피 나 혼자 애쓴다고 변하는 건 없으니 남들 따라 편하게 적당히 즐기다 가자는 주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회문제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최대한 외면하는 태도, 먼저 바꿔보려는 사람에게 '네가 얼마나 잘났길래'라며 멸시하는 반응, 모두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이 믿음에 기반하는 거야...." p. 39

고기가 없어서 못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명절에나 조금 맛볼 수 있는 것이 돼지고기 소고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먹을 것이 차고도 넘친다. 그건 우리가 좋은 세상에 태어난 행운일 수도 있지만, 그냥 그렇게 치부하기엔 미심쩍은 면이 너무나 많다. 우리가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 그렇게 손쉽게 누리고 있는 혜택이 사실은 누군가의 고통에 기인하고 있다면 어떨까?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사실은 육식을 그만둘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나를 힘들게 한다. 작가가 말한 입안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이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그런 미개한 사람인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작가의 강하고 분명한 어조는 내가 비건이 되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느낀 이 불편함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내 주위의 누군가가 비건이라면, 힘들겠다는 걱정이나 유별나다는 비난 대신, 비건 레스토랑을 같이 찾아가 줄 수 있는, 그리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정도의 유연함을 장착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차피 세상은 안 변할 거라는 믿음에 의탁하기 보다는 문제를 인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의 길을 찾아야겠다고 느낀 나로 일단은 만족하려고 한다.

반응형

'나를 위해 읽는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지 5」  (3) 2021.07.02
「토지4」  (2) 2021.06.11
「인간실격」  (12) 2021.06.04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22) 2021.05.13
「책 읽고 글쓰기」  (10) 2021.05.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