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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읽는 책

「토지 2」

by *소은* 2021. 3. 29.

「토지 2 」 박경리, 마로니에북스, 2012

 

▨ 최지수의 죽음 ▧

 

 치수가 죽었다. 이제 이야기의 초반인데, 너무나 허망하고 갑작스럽게도 서희의 아버지가 죽은 것이다. 별당아씨도 구천이와 떠난 상태이니 이제 서희는 고아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제 7살이 된 서희가 너무 안쓰러우나, 어차피 최지수는 서희에 대한 애정이 없었고, 서희 곁에는 그녀를 끔찍이 생각하는 봉선네와 봉선이, 길상이가 있으니까......

 

 서희의 할머니인 윤시 부인의 비밀이 밝혀지고, 왜 아들인 최지수와 척을 지게 되었는지, 구천이와 별당아씨가 도망갈 수 있게끔 도와준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진다. 강포수와 수동이를 데리고 구천이를 찾아 지리산을 헤매는 최지수와 한탕으로 부귀영화를 꿈꾸다가 결국 관아에 잡혀가게 되는 평산과 귀녀, 칠성이 이야기까지. 2권에서는 큼지막한 사건 사고들이 연속되어 시종일관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최근 유행하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며 삶의 희로애락이 살아있는 이야기의 정수이다.

 

 

 최지수는 강포수도 수동이도 없는 텅 빈 산막 안에 홀로 앚아, 마치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머루 덩굴의 집념과 최치수의 집념에는 얼마만 한 거리가 있는 것일까. 귀녀의 집념이 머루 덩굴을 닮았다면 치수의 집념은 덩굴에 휘감기면서 하늘로 뻗으며 제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는 소나무의 의지를 닮았다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천지 만물이 시작과 끝이 있음으로 하여 생명이 존재한다고들 하고 탄생은 무덤에 박히는 새로운 팻말의 하나라고들 하고 죽음에 이르는 삶의 과정에서 집념은 율동이며 전재이며 결실이라고들 하고, 초목과 금수와 출류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들 한다. 인간의 죽음은 좀 사치스러워서 땅속 깊숙이 묻혀지고 혹은 풍습에 따라 영혼의 천상행을 위해 편주에 실어 물 위에 장사지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짐승들 같이 고기밥이 되는 일도 있고 짐승에게 창자를 찢기기도 하고 까마귀밥이 될 수도 있다. 이 갖가지 죽음의 처리를 앞두면서, 헛된 탕생에 삶을 잇는 그동안을 집념의 조화는 참으로 위대하여 옷을 걸치고 언어를 사용하고 기기묘묘한 역극으로써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비극과 희극이 등은 댄 양면 모습이며 무덤의 팻말을 향해 앞뒤걸음을 하는 눈물 감춘 희극배우, 웃음 참는 비극배우의 일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귀녀와 평산의 경우도 그러하거니와 패륜을 다르신다는, 양반의 권위 손상에 보복을 한다는, 적어도 그만한 이유를 박아놓은 집념을 앞세우고 지금 구천이를 쫓고 있는 최치수는 웃음 참는 비극의 배우일까. 그의 집념이 설령 본능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며 정열과 욕망과도 거리가 있는 것이며 복잡한 인과관계가 따르고 있다 하더라고 풍토가 빚은 계율에의 복종이며 그 이행을 풍습의 괴뢰적 역할밖에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집념에는 다를 바가 없을 성싶기는 하다.  p. 200

 

 산에 와도 사냥꾼이 못 되고 마을에 가도 사내가 못되고 서원에 들어서도 학자가 못 되고 만석꾼 땅문서는 있되 장자가 못 되고 어머님이 게서도 아들이 못되고 자식이 있어도 아비가 못 되고 계집이 있을 때도 지아비가 못 된 위인이 개화당이 되겠습니까, 수구파가 되겠습니까. 가동들은 거느린 의병대장이 되겠습니까. 신선이 못 되면 허깨비라도 되어야겠습니다만 무엇에 미쳐서 허깨비가 되오리까. 그럼에도 잡사를 잊지 못하니 신선인들, 이 적막한 산속에서 어찌 이다지도 저는 사람임을 잊지 못하고 영신이 없음을 절감하세 되는지요. 하온데 선생님, 이 영신이 가득 차 있을 법한 적막한 산중에서 한 발만, 사람 세상으로 나갈 것 같으면 사람이 아닌 자신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어인 까닭이오니까. p. 318

 

 최지수의 고뇌와 적막함이 잘 표현된 문장들이다. 그는 어려서 어머님의 사람을 읽고 외롭게 컸으며 아내와도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유일한 자식인 서희와도 정을 나눌 수 없는 아버지였고, 병약하고 날카로운 심성을 지닌 최참판댁의 허울 좋은 주인이었다. 토지의 많은 인물들이 그렇긴 하지만 최지수도 참 안쓰러운 인물이다. 그 시대의 양반이라는 신분이 더욱더 그를 옥죈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토지 1」

▨ 대장정의 시작 ▧  2021년을 시작하며 독서토론 소모임으로 토지를 한 달에 반권씩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대하소설 토지는 장장 20권. 반권씩 읽으면 40개월. 그러니까 3년 4개월이 걸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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