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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읽는 책

「떨림과 울림」

by *소은* 2021. 4. 14.

「떨림과 울림」, 김상욱, 동아시아, 2018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

 

 나는 철저한 문과생이다.

학교 다닐 때도 수학이 가장 어려웠고, 물리는 끔찍했다.

어떤 이는 정확한 답이 있는 수학과 과학이 매력적이라던데, 나는 도저히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공식의 개념을 전혀 모르겠어서 빠르게 수포자의 길로 들어선 케이스다.

그런 내가 물리학자의 책을 읽는다는 건 사실 약간의 도전 정신이 필요한 일이었다.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이 아니었다면 절대 펼쳐보지 않았을 이런 류의 책.

 

 애정 하던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봤던 과학자 김상욱의 책이라 그래도 첫 페이지를 넘기는 손길이 무겁진 않았다.

그러나 책의 프롤로그를 읽고 난 이미 이 책에 빠져버린 듯했다.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한자리에 말없이 서 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떨고 있다. 그 떨림이 너무 미약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미세한 떨림을 볼 수 있다. 소리는 떨림이다. 우리가 말하는 동안 공기가 떤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의 미세한 떨림이 나의 말을 상대의 귀까지 전달해준다. 빛은 떨림이다.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시공간상에서 진동하는 것이다. 사람의 눈은 가시광선밖에 볼 수 없지만 우리 주위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빛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전자기장의 떨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다.  
   인간을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사진은 마음을 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는 심장을 울리고, 멋진 상대는 머릿속의 사이렌을 울린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 프롤로그 중에

 

 우주와 인간을 한데 버무리고, 과학과 인문학을 엮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과학책이지만, 그 어떤 인문학 책보다도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할 자세에 대해 심도 있게 이야기해 주는 책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너무 슬플 때는 우리 존재가 원자로 구성되었음을 떠올려보라. 그의 몸은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 또 다른 무엇인가의 일부분이 될 테니까. 모든 것이 원자의 일이라는 말에 허무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이 모든 일은 사실 원자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으니 원자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p. 49

 

   인생을 살아가며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위상수학적 구멍의 개수에 비유랑 수도 있다. 구멍의 개수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변형도 받아들이며 자유롭게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위상수학적으로는 모두 동등한 삶이다. 삶의 겉모습을 몇 배로 늘리는 것에는 집착하면서 정작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가치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있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가치는 무엇일까? 위상수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p. 83

 

   20세기 초 현대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이 발견한 것은 어찌 보면 동양의 오래된 지혜였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개념이 혼재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본질이라는 거다. 물리학에서는 이것을 처음에 '이중성'이라고 불렀고, 나중에는 '상보성'이라는 용어로 공식화시켰다. 상보성의 중요한 예는 하이젠베르크가 찾아낸 '불확정성의 원리'다. 불확정성의 원리란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운동량은 물체의 질량에 속도를 곱한 거니까 그냥 속도라고 보아도 무방한 위치와 속도는 뉴턴의 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물리량이다. 이 원리는 물리학자들이 자연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인 제약을 가한다. 이제 물리학자는 우주를 완벽하게 기술하는 전지적 위치에서 주관적이고 확률적이며 불확실한 세상으로 내동댕이쳐진다.  p. 129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p. 251

 

 

 그래서 내가 이 책을 다 이해했을까?? 절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물리학의 전반적이고 기초적인 개념을 친절하게 (그리고 길지 않게)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에게 간단한 이론은 나에게는 심오한 이론이 된다. 

책을 두번 읽었건만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읽는 내내 저자가 과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물리를 다정하게 대해주길 얼마나 바라고 있는 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애틋한 마음이 전해져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힘을 주는 듯했다.

그래서 그냥 자신 있게 말하려고 한다.

이제 난 위상수학이 뭔지 알고, 불확정성의 원리도, 상전이가 뭔지도 안다. (양자역학은 과학자들도 아직 모른다고 하니 내가 모르겠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무엇보다 물리학은 살아가는 것 그 자체였다. 

그걸 느낀 것만으로도 나는 과학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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