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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읽는 책

「죄와 벌」

by *소은* 2021. 1. 18.
죄와 벌 1
국내도서
저자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Фёдор М. Достоевский) / 김연경역
출판 : 민음사 201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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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인가? ▧

 르겠다. 왜 이 책이었을까? 고전을 읽어봐야겠다 생각했고, 문득「죄와 벌」이 떠올랐다. 몇 년 전 읽었던 「안나 카레니나」의 울림이 아직 생생했고, 러시아 문학을 좀 더 접해 보고픈 마음이 있었던 걸까? 그렇게 2020년의 마지막과 2021년의 시작을 함께 하게 된 책이 「죄와 벌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새로운 블로그의 포문을 여는 책이 되었다. 무튼 내내 의미있는 책이 될 터이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른다. 노파를 죽인 것은 다분히 계획적이었다. 외투 속에 도끼를 숨기고 철저한 계획 속에 자행된 살인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갈취해 먹고사는 악덕한 고리대금업자는 그의 입장에서는 세상에 무익한 존재였고, 그런 쓸모없는 존재를 처리하는 본인 같은 사람은 일종의 영웅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첫 번째 살인 후 열려 있던 문으로 들어선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타를 죽인 것에는 그런 명분조차 없었다. 두 번째 살인 후 그는 괴로움에 고통스러워한다.

 

 도끼날은 곧바로 두개골을 내리쳤고, 이마의 윗부분을 거의 정수리까지 전부 금방 쪼개 버렸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푹 쓰러져 버렸다. 라스콜니코프는 너무 당황하여 그녀의 보따리를 거머쥐었다가 다시 내던지고는 현관 쪽으로 달려갔다.

두려움이 더욱더 거세게 그를 사로잡았고 전혀 예기치 못한 이 두 번째 살인 이후에는 특히 더 그랬다. 어서 빨리 여기서 달아나고 싶었다. 만약 이 순간 사태를 좀 더 올바르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즉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난감하고 절망적이고 추악하고 터무니없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더불어 이곳을 빠져나가 집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할지도, 또 악행을 저질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만 있었다면, 그는 당장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제 발로 자수하러 갔을 것이다. 그것도 신변의 위협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오직 자기가 저지른 것에 대한 공포의 혐오감 때문에 말이다. 특히, 그의 내부에서는 혐오감이 유달리 치밀어 올라 시시각각 커져 갔다.  <1권 p.147>

 

살인이라는 죄를 저지른 라스콜니코프가 그의 합당한 벌을 받기 위해 자수하기까지의 온갖 번뇌와 관계와 사랑과 연민을 겪는 과정을 담담하지만 역동적으로 풀어가는 이 소설은 나를 내내 혼란스럽게 했다. 나는 점점 그가 이해되었던 것이다. 나는 어느새 그가 이대로 소냐와 행복하길 바라고 있었다. 자수하지 말고 잡히지도 말고 어디 먼 곳에 도망가서 그냥 조용히 행복하게 살아! 하는 어린애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모든 것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이 환경에 달려 있고, 인간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2권 p.172>

나는 그때 깨달았어, 소냐." 그가 황홀해하며 말을 이어 갔다. "권력이란 오직 감행하는 자, 즉 그것에 마음을 두고 쟁취하려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여기에는 하나, 오직 하나만 있으면 돼. 오직 감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 (중략) 나는 감행하고 싶었고 그래서 죽였어...... 그저 감행하고 싶었을 따름이야, 소냐, 바로 이게 이유의 전부야!" < 2권 p.261>

내가 과연 노파를 죽인 걸까? 나는 나 자신을 죽인 거야. 노파가 아니라! 어쨌거나 그로써 나 자신을 작살낸 거야. 단번에 영원토록......! 2권 p.264>

 

물론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사이 어느 중간쯤에서 아우성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그 아우성의 힘겨움 안으로 들어가 단죄의 칼날을 들이민다고 생각했을 때 선과 악의 판단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노파는 죽임을 당해도 마땅할 만한 악인이었을까? 악인인 노파를 죽인 라스콜니코프는 악인인가 아닌가? 누가 그 기준을 세우고 죄를 판단하고 단죄할 수 있을까? 그 기준을 세우는 자는 과연 선한 자인가? 라스콜니코프는 결국 본인이 살인자라는 괴로움에 못 이겨 자수를 선택했고(도망치거나 자살할 수도 있었음에도) 자신의 선택에 따라 죄인이 되었다. 그는 형사상 범죄를 저질렀고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사회의 정의는 구현된 것일까?

 

그런데 정작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소냐를 통해서 알게 된 진정한 사랑의 의미, 자신을 앞뒤 없이 사랑하는 어머니와 여동생 두냐. 주인공은 이야기한다. "내가 만약 혼자였다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 역시 아무도 절대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없었을 텐데!" 그는 사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고 사랑으로 인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죗값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 그의 행위의 모든 이유였다. 예상컨대, 그러므로 그는 모든 유형을 끝내고 마침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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