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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해 읽는 책

「소년을 읽다」

by *소은* 2021. 3. 28.

「소년을 읽다」 서현숙, 사계절, 2021

 

▨ 다음에는 '이런 곳이 아닌 곳'에서 만나요 ▧

 

 

 「소년을 읽다」는 공립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저자가 2019년 소년원 아이들의 국어수업을 하게 된 1년여의 여정을 담고 있다. 책에서 저자도 이야기했지만 나 또한 소년원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걸까. 막연하게 구치소나 수용소 따위의 공간을 떠올렸던 나는, 내가 소년원이라는 장소와 그곳의 아이들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나를 깨달았다. 소년원은 교정과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기관(법무부 소속 특수교육기관)이다. 그래서 'OOOO학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안의 공간 공간마다 철장이 드리워져 있고, 여기저 저리로 이동하려면 꼭 동행자가 따라붙어야 하고, 징벌방과 집중방 같은 체벌방도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평균이상의 가해를 가하고 재판을 받고 그곳에 왔을 아이들. 그러나 그 곳 아이들의 눈은 많고 선했으며, 예의와 배려와 측은함도 아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간에는 농도가 있다. 어떤 시간은 묽은 채로 주르르 흘러, 지나고 나면 아무 흔적이 없다. 어떤 시간은 기운이 깃들어 찐득하다. 질고 끈끈하다. 그런 시간은 삶에 굻고 뜨거운 자국을, 원래의 모습과 달라진 흔적을 남긴다. 좀처럼 잊지 못하게 마련이다. 오늘을 통과한 아이들의 영혼에는 어떤 자국이, 흔적이 그려졌으려나. 아마 전과 다른 무늬가 아로새겨지지 않았을까. 내 마음에 들려왔다.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 움직이는 소리. p. 36

 

 책읽기가 생소한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즐겁게 읽기를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책의 저자를 초대해 함께 시간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내어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정성과 마음을 다하면 언젠가는 가 닿기 마련인가 보다. 

 

 

 

 우리는 부족할지라고 환대의 준비를 했다. 이 시간의 함께 읽기 경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언젠가 아이들이 알게 될까? 환대로 사람을 맞이하는 경험, 자신이 주체로 활동하는 경험은, 나도 타인도 소외시키지 않는 연습이다.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연습이다. 이런 연습이 쌓이면 삶에서 적어도 '나'를 소외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막 살지 않을 것 같다. 길 밖으로 떨어지더라도 자신을 돌보며 다시 삶의 길 위에 올라서게 되지 않을까. 두 다리에 힘주고 걸어가게 되지 않을까. p.50

 

 소년원에 들어오기 전에 혹은 소년원에서 나간 이후에도 이 소년들을 환대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할까.

그들은 아직 어리고 아직은 어디에서나 환대 받아 마땅하지만, 소년 자신들도 그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듯 해서 그게 슬펐다. 환대받는 경험을 그들이 살면서 무엇보다 큰 힘이 될텐데 말이다.

 

 

 

 소년원 아이들이 독서동아리를 해서 뭐 하나요?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할 수준이 되냐고?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15년 이상 아이들과 책을 읽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알게 되고 믿게 된 것이 있다. 아이에게 "책으로 말을 거는" 일이 쉬우면서도 위대한 힘을 지녔다는 것. 심하게는 사람의 영혼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책을 함께 읽은 사람들은 감정을 나누고 서로 마음을 연다. 서로를 향해 무장해제한다. 주변의 일들에 함께 물음표를 꽂아본다.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장애인이 그런 대우 받는 게 정당한 거야? 여자와 남자에 대한 차별 괜찮은 거야? 나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야?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야? 삶과 세상에 대해 점점 더 나은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p. 66

 

 소년원에 들어온 아이들 대부분은 가정과 사회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황하며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주거나 나침반이 되어줄 어른들은 없었다. 그들이 소년원에서 나갔다가 다시 다른 소년원이나 교도소로 가지 않고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래도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소중해야 남도 소중하고, 그래야 삶을 막 살지 않을 테니까. 그러러면 아무래도 책 읽기가 가장 손쉬운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시간 남았는데, 철민이 시 열 편 외운 기념으로 시 외우는거 음성 녹음할까?"

"아니오, 싫어요."

철민이가 단호하게 거절한다.

"왜? 너 목소리 멋있잖아. 나중에 집에 가면 녹음 파일 보내줄게."

"싫어요, 샘. 이런 데서 살았다는 흔적, 어디에도 남기고 싶지 않아요."

 

그래, 소년의 솔직한 마음이다. 이해한다. 그럼에도 이 시간의 맨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맨 아래 지층에 깔린 빛깔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헛헛하다. 소년이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 시간에 나도 포함되어 있는 까닭이다. 나는 누군가의 어두운 시간, 달아나고 싶은 시간, 숨기고 싶은 시간에 함께 있는 사람이다. 여기에서의 시간은 소년의 삶에서 최대한 빨리 삭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에 대한 기억도 아마 그렇겠지. 강물 깊은 곳에 고요히 가라앉은 채 아무도 들추어내는 일이 없어야 하는 앙금 같은 존재. 이런 생각 끝에는 어김없이 마음이 서늘해진다. 이 서늘함이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p. 187

 

 같이 공부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다른 과정으로 가거나 집으로 가게 되면 그것은 사실 그들에게 잘 된 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그것을 이별을 뜻하는 것이니까.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사랑은 영원한 짝사랑 이라더니, 정말 그러한가 보다. 집으로 가면서 인사 하나 남기지 않는 아이들이나 퇴원 후 전혀 소식을 전하지 않는 몇몇의 아이들에게 저자는 내내 서운한 기색을 비친다. 그만큼 아이들을 사랑했고, 아꼈고, 마음을 다해 대했다는 뜻일 터이다.

 

 나도 아이들의 책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모르지만 그게 실현이 된다면 저자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내내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책으로 마음을 나누는 일은 언제라도, 누구라도 가슴 떨리게 좋은 일이지만, 그게 밥벌이가 된다면 또 달라질까. 마음을 찬찬히 다잡아 놓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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