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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읽는 책

「회색 인간」

by *소은* 2021. 4. 20.

「회색 인간」 김동식, 요다, 2017

 

▨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 ▧

 

  작가 김동식은 한국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로 불린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가 떠올려지기도 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풍부한 발상, 생각치 못했던 반전으로

짧은 글이지만 인간의 본성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많은 단편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저자는 글쓰기를 재대로 배워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악세사리 공장에 취직해서 10여 년을 일했다.

2016년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에 창작글을 올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300여 편이 넘는 글을 썼다. 

자신의 글이 읽히고 댓글이 달리는 것이 반가웠고, 댓글을 더 받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한편 한편 써 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치부하기엔 그가 만든 상상의 세계가 만만치 않다.

 

  「소년을 읽다」에서 소년원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고 소개되어 찾아본 책이다.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책이라며 아들도 후루룩 읽어 내렸다.

길지 않은 단편들이라, 책 읽기가 부담인 아이들도 즐겁게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기 좋은 책이다.

 

 

 

  그날 또 한쪽에선 한 남자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았다.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 새끼가 벽에다 돌멩이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그는 지상에서 화가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화가는 필요가 없었다.
땅을 파기에도 모자랄 그 힘으로,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다니?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분노한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은 그는,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서로를 돌봐주지 않았다. 부상을 당한 자에게 빵을 나누지 않았다. 쓰러지면 그걸로 끝이었다.
지상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든,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든, 소설을 쓰던 사람이든, 이곳에서 예술은 필요가 없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인간들에게 있어 예술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이곳의 회색 인간들에겐 땅을 팔 수 있는 회색 몸뚱이만이 가진 전부였고, 남들도 다 그래야만 했다.
한데, 그 여인은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몸을 가누지 못해 바닥에 주저앉아 굶어 죽어가던 그 여인이, 또다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회색 인간- 중에

  인간이 추락하고 또 추락해서 밑바닥까지 닿았을 때, 우리는 한없이 추악해질 수 있다.

생존을 위한 본능만 남아 이성과 도덕성은 쉽게 읹혀지고, 그 누구도 그걸 탓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 다다를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란 건 무엇일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노래하고, 춤추고, 기억하고, 그리면서

추상적인 것에 대한 염원을 드러내고, 그리하여 결국은 상실한 인간성을 회복하게 된다.

 

 

 

  "1년 뒤에 세상이 망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일하던 사람들, 모욕을 참아가며 굽신거리던 사람들, 현실에 부딪혀 하기 싫은 일을 하던 사람들, 모두가 그만뒀다. 여행을 떠나고, 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쉬고 싶은 만큼 쉬었다.
일하는 사람이 없으니 물가가 치솟았지만, 그만큼 사람의 가치도 치솟았다. 일하는 사람만큼 귀한 사람은 없었다.
그동안 쌓아둔 걸 놓을 수 없었던 기업들은 어떻게든 기업을 유지하고 싶어 했지만, 예전과 같은 대우로는 절대 사람들을 붙잡을 수 없었다. 직원을 하늘같이 여기며 모셔야 할 지경이었다.
서비스직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딴 취급을 당하면서 이 일을 왜 해? 안해!'

  공부만 죽어라 시키던 부모들도, 당장 아이들과의 시간을 늘리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학교를 아예 안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미래를 위해 현재는 희생하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성공만을 좇으며 인간 같지 않은 삶을 살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있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당장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운석의 주인- 중에

  약 1년 후에 운석이 지구로 떨어져 지구의 대부분의 생명체가 멸종하게 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갖고, 하루하루를 그저 행복하게 사는 데 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런 가정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실 우리는 그렇게 살아 마땅하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로 희생하고 과거를 후회하느라 놓치고 있는 현재의 행복은 누가 보상해 주는가.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떨어지는 운석이 특정인의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가 미국으로 가면 미국으로. 한국으로 가면 한국으로.

운석의 최종 충돌 위치가 그가 있는 위치로 계속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인들은 그에게 무엇을 바라게 될까? 

궁금하면 책을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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